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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 3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어업(漁業)도 그들의 농업(農業)을 보충(補充)하야 생계(生計)를 도(圖)하는 한 개(個)의 부업적 종사(副業的 從事)에 불과(不過)하며 해녀(海女)의 나잠어업 이외(裸潜漁業 以外)는 별(別)로 볼만한 것이 없이 극(極)히

“원시(原始)”적(的)인 형태(形態)에 잇엇으며 연안어업(沿岸漁業)의 대부분(大部分)은 외래 통어선(外來 漁船)의 활약(活躍)에 전연(全然)맡기어지고 잇엇든 것이다. (도세일람(島勢一覽) 일칠육혈 참조(一七六頁 參照) 제주(濟州)의 경제적(經濟的) 발전(發展)에 잇어 이 자연적(自然的) 제조건(諸條件)이 여하(如何)히 거대(巨大)한 질곡(桎梏)이 되어 잇는가는 최근(最近) 국방적(國防的), 경제적(經濟的) 거대(巨大)한 개발계획(開發計劃)조차가 순순(順順)히 진행(進行)되지 못함을 보아도 알수잇을 것이다.

상공업(商工業)도 물론 원시적 형태(勿論 原始的 形態)를 버서 나지 못하엿나니 그것은 그들의 자연경제(自然經濟)의 유통공급(流通供給)에 불과(不過)하며 그들의 생활(生活)에 필요(必要)한 옹(甕), 서(鋤), 마포(麻布), 죽롱(竹籠), 즐(櫛), 관물등(冠物等)의 가내수공업품(家內手工業品)을 생산(生産)할뿐으로 그것을 시장(市場)에서 혹(或)은 행상(行商)으로서 서로 취인(取引)할 뿐이다.

요(要)컨대 그들은 이러한 자연경제(自然經濟)를 영위(營爲)하면서 그들의 원시적(原始的)인 소박(素朴)한 생계(生計)와 근면(勤勉)으로서 험악(險惡)한 자연(自然)의 극복(克服)에 공동적 협력(共同的協力)을 하여온 것이니 이러한 그들의 

“생활(生活)”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최근(最近)까지 “수년흉작(數年凶作)에 조우(遭遇)되드라도 식량(食糧)의 결핍(缺乏)을 근심치 안케”하엿든 것이니 (일람사혈(一覽四頁)것참조(參照)) 제주(濟州)의 개발(開發)이 만일(萬一)제주인(濟州人)의 문화적(文化的) 경제적향상(經濟的向上)을 위(爲)하는 것 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이러한 험악(險惡)한자연조건(自然條件)을 공동협력(共同協力)하야 극복(克服)하는데 현대과학(現代科學)의 전력(全力)을 동원(動員)하여야 할것이오 영리적채산(營利的採算)을 위(爲)하야 결국(結局) 그들의 공동적협력(共同的協力)을이(利)로서 분열(分裂)시키고 자리(自利)를 위(爲)한 자본(資本)에의 예속(隸屬)을 유래(由來)할 것 이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4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8-31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5
첨부파일
669.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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