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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 4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그것은 그들의 생활(生活)을 향상(向上)시키지 못할뿐 아니라, 도리여  그들의 자연(自然)에 대(對)한 공동적투쟁(共同的鬪爭)을 버리게 하고 호상(互相)의 알력(軋轢)을 격화(激化)하야 자본(資本)의 위력(威力)과 함께 때로 닥치는 자연(自然)의 폭위(暴威)에 비참(悲慘)한 희생(犧牲)을 제공(提供)할뿐이리라. 보라! “만근문화(輓近文化)의 추이(推移)에 반(伴)하야” 교통(交通)이 발달(發達)되고 

“상품(商品)”경제(經濟)가 들어옴을 따러 지주(地主)가생기고 자본(資本)이편력(遍歷)하기 시작(始作)함을 따러 그들 도민(島民)의 생계(生計)가 농어(農漁)로서는 도저(到底)히 감당(堪當)치 못하게 되엇다는 사실(事實)(일람사칠(一覽四七)사팔혈참조(四八頁參照))은, 오인(吾人)으로 하여금 이러한 예측(豫測)을 하게 한다.

이러하야 그 상대적 과잉적(相對的 過剩的) 노력(勞力)은 점차(漸次)로 외래적 자본(外來的資本)에로 또는 출가로동(出稼勞動)에도 전화(轉化)하게 되나니 대판등지(大阪等地)의 출가로동자(出稼勞動者)가 벌서 오만(五萬)이라는 다수(多數)에 올으고 잇으며 그들의 이러한 혈한(血汗)으로 된 돈, 해저(海底)의 “씨러기통”을 들추어 어든 돈이 아니고서는 도민(島民)의 생활수지(生活收支)가 거의 불가능(不可能)한 상태(狀態)에 잇다고한다.(해녀(海女)들은 최근 철물가고등(最近 鐵物價高騰)으로, 대판등지(大阪等地)의 해저(海底)를 들춘다고 한다) 불과이십여만인구(不過二十餘萬人口)에 오만이상(五萬以上)의 출가로동자(出稼勞動者)가 존재(存在)한다는 것은 ​

“경이(驚異)”적(的) 사실(事實)이다. 내가 제주(濟州)에 갓을때다 가는 비나리는 오후(午後)에 용수(龍水)의 명소(名所)를 구경(求景)하기 겸(兼) 촌가(村家)의 생활(生活)을 엿보기 겸(兼)하야 용담리(龍潭里) 용연동(龍淵洞)을 차즌일이 잇다. 다음에 말하려니와 도적(盜賊)을 모르는 그들인지라 집집마다 문호(門戶)는 개방(開放)되여 잇으나 주인(主人)을 차츠면 한사람도 없이 무인공가(無人空家)엿으니 그들은 모다 일터로 나간 모양이다.

​5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8-31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7
첨부파일
669.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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