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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 5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이집 저집 다니다가 이훈옥(李勳玉)이라고 문(門)패붙은 집을 드러서 주인(主人)을 찾으니 그는 방금(方今) 일터로 부터 도라온 모양이다. 그에게 냉수(冷水)를 청(請)하야 목을 적시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가 우연(偶然)히도 그 가족 십여인(家族十餘人)이 대판(大阪)에 출가(出稼)하여잇다는 것을 알게 되엿다 그의 아들도 자부(子婦)도 손자(孫子)도 손녀(孫女)도 전부(全部)나아가 잇다는 것이다.

“흥미(興味)”잇게 그의 말을 듣고 잇느라니 마츰 배달부(配達夫)가 서류(書留) 한장을 들고 그를 찾으며 인장(印章)내기를 청(請)한다. 그순간(瞬間)그의 은연(隱然)히 반기는 태도(態度)와함께 나는 직각적(直覺的)으로 이것이 대판(大阪)으로부터 온 위체(爲替)인 것을 알엇다. 그의 봉투(封套)를 떼고이(二)원소위체(圓小爲替)를 끄내면서 빙그레 우섯다.

매일송금(每日送金)하여오느냐 무럿드니 종전(從前)에는 송금(送金)이 다소(多少)잇엇으나 요새 와서는 오즉 임금(賃金)이 박(薄)하여야지오하고 그 동리(洞里)에도 몇 달만이나마 송금(送金)이라고 하는 사람이 불과사오인(不過四五人)이라고 하면서 은연(隱然)히 그 자제(子弟)들은 그중(中)의 한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한다. 아마도 그 출가(出稼)한 십여인(十餘人)이 푼푼히 모아 보낸돈이리라 이 용담(龍潭)이라는 동리(洞里)는 이구(二區)로 되어잇는데 그의 말에의(依)하면 일구(一區)에만 천여명(千餘名)의 출가자(出稼者)가 잇다고 하니 얼마 놀라운 사실(事實)인가? 나는 여기서 이경이(驚異)를 새삼스러히 느끼엿든 것이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8-31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5
첨부파일
669.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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