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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오(五): 전도(顚倒)된 가장제도(家長制度)(1937년 09월 01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그러나 제주(濟州)에 잇어의 부녀자(婦女子)의 노동(勞動)은 원칙적(原則的)으로 이러한 가정내부(家庭內部)의 그것에 한정(限定)되어잇는 것이 아니고 또 단순(單純)히 가장(家長)을 도웁는 종속적(從屬的)인 노동(勞動)이 아니며 가장(家長)과 나란이 하야 동격적(同格的)으로 노동생활(勞動生活)을 영위(營爲)한다. 그들은 감(시(柿))물 드린 노동복(勞動服)을 입고 산(山)떰이 같은 짐을 지고 우마(牛馬)를 몰며 도로(道路)에 출몰(出沒)한다 구덕을 끼고 시장(市場)에가며 노동복(勞動服)을 벗어 노코 회석(會席)에도 나아간다.(어떤 금융조합이사(金融組合理事)가 새로 이곳에 부임(赴任)하엿을 때 그를 위(爲)하야환영회(歡迎會)를 열은 자 전부 부녀자(全部 婦女子)엿다고 한다)

그들은 이러한 노동(勞動)은 물론(勿論) 저험(險)하고 박(薄)한 자 연(自然)을 상대(相對)로 싸워가며 영위(營爲)하는 그들의 원시적자 족적경제(原始的自足的經濟)에서 나오는 

“부득(不得)”기(己)한 것 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저러한 노동(勞動)을 하지 안코서는 저 소박(素朴)한 원시적 생활(原始的 生活)조차도 할 수 없으리 만치 그들의 노동(勞動)은 너무나 과(過)하고 너무나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즉도 노동(勞動)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역사적조건(歷史的條件)은 없섯든 것이다.

그것은 아즉 천(賤)한 것이 안니다. 그럼으로 그들의 노동(勞動)은 결(決)코 우리의 농어촌부녀(農漁村婦女)나, 도시노동부녀(都市勞動婦女)의 노동(勞動)과 성질(性質)을 가치하는 것이 아니다. 좌폐(坐閉)와 굴욕(屈辱)의 생활(生活)을 오히려 천부(天賦)의, 그리고 귀(貴)여운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부녀(婦女)들로서 헐수없이 외부(外部)에 혹(或)은 노동시장(勞動市場)에 드러내 노이는 참담(慘憺)한 운명(運命)은 이들에게는 아즉 체험(體驗)되어잇지 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분열(分裂)이 격심(激甚)하고 일부(一部)에의 노동과중(勞動過重)과동시(同時)에 일부(一部)의 

“기생(寄生)” 적유한(的遊閑)이 출현(出現)됨으로써 비로소 노동일반(勞動一般)은 천시(賤視)되어 왓고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철칙(鐵則)이 되는 순간(瞬間) 특(特)히 부녀(婦女)의 노동(勞動)은 천물(天物)이 되엿든 것이니 우리 시민사회(市民社會)의 왜유(歪由)된 상식(常識)으로서는 사실(事實)그대로의 그들의 현실적 로동생활(現實的勞動生活)을 평(評)할 자격(資格)을 가지지 못하리라.

→3에 계속​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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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9-01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7
첨부파일
670.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오(五) 전도(顚倒)된 가장제도(家長制度)(1937년 09월 01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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