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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팔(八): 도민(島民)의 남녀관비판(男女觀批判)(1937년 09월 04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그러나 오인(吾人)은 차라리 반대(反對)로 그들에 정조(貞操)라는 말을 알지 못하엿으리 만치, 그리고 그것이 강요(强要)되지 안흐니 만치 순진(純眞)하엿다는 것을 아는 동시(同時)에 그 순진(純眞)한 그대로 문화적(文化的)으로 향상(向上)되엇으면 하는 기원(祈願)을 마지 안는다.

웨? 정조관념(貞操觀念)이 생겨난 소행(所行)을 과학적(科學的)으로 살필 수 잇다면 여성(女性)이 여하(如何)히 이 아름다운 관념(觀念)에서 최대(最大)의 희생(犧牲)을 바덧섯다는 것을 알 수 잇는 까닭이다. 그것은 인간(人間)이 특(特)히 여성(女性)이 그 몸을 돈으로써 바꾸기 시작(始作)하고 남녀(男女)의 결합(結合)이 순결성(純潔性)을 상실(喪失)하기 시작(始作)하고 남성(男性)에 의(依)한 여성(女性)의 “지배(支配)”가 시작(始作)되든 순간(瞬間)에 아름다운 베-을 쓰고 나온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현상(社會的現象)이 제주사회(濟州社會)에 침윤(浸潤)되지 안흔 이상(以上) 정조(貞操)의 관념(觀念)이 우리사회(社會)에서와 같이 확립(確立)되지 안헛음도 또한 자연(自然)이리라. 특(特)히 종래(從來) 육지사회(陸地社會)의 영향(影響)이 적엇고 느젓든 산남지방(山南地方)에 잇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 어찌 우연(偶然)이랴! 나는 우에 말한 동일(同一)한 운전수(運轉手)의 입에서 이러한 말을 들엇다.

즉(卽) 아모리 그들이 정조(貞操)가 없어도 그들은 누구나 화류계(花柳界)에 몸던지기를 끄리고 그러한 사람은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멸시(蔑視)한다. 그들은 정(情)없는 남편(男便)과 살기보다는 대판등지(大阪等地)에의 출가(出嫁)를 오히려 다행(多幸)으로 생각하나 결(決)코 화류계(花柳界)에 드러 가지는 안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여하(如何)히 정조관념(貞操觀念)을 몰으더라도 - 아니 그것을 몰음으로써 - 그들의 성적분합(性的分合)이 

“여하(如何)히”자조 변(變)하드라도 적어도 그들 자신(自身)으로서는 그들의 몸을 파는 행동(行動)이아니라는 것 따라서 그것이 정조(貞操)를 파는 행동(行動)이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잇다.

→3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9-04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첨부파일
673.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팔(八) 도민(島民)의 남녀관비판(男女觀批判)(1937년 09월 04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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