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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십(十): 대륙성(大陸性)과 소박성(素朴性) 하(下)(1937년 09월 07일) 4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그제야 우리는 두사람을 불너드렷고 배는 천천히 저어나간다. 한참 나갓을때다. 그들 수인(數人)의 해녀(海女)가 손즛하여 우리를 부른다 우리는 그래도 그들이 우리의 래의(來意)를 양해(諒解)하고 즐겨, 이배에 올라 바다에 나아가 작업(作業)을 보여주려는가 보다 라고 그들에 갓가히 갓섯다. 어찌 하엿으랴!

그는 분연(奮然)히 칼든 팔을 물으며 노호(怒號)하지 안는가! 웨 그대들은 우리의 작업(作業)을 방해(妨害)하는가 하는 것이다. 당장(當場)에 배에 올라 우리를 지를 듯 하엿다. 그때에 나는 인솔자(引率者)로써 불가불사의(不可不邪意)없는 거즛 석명(釋明)을 하지 안흘 수 없섯다. 나는 망원경(望遠鏡)을 내들고 이것을 가지고 본것이지 사진(寫眞)을 찍은 것이 아니니 안심(安心)하고 

“작업(作業)”하라고 간곡(懇曲)히 말하엿다(이러는 순간(瞬間) 나는 그들의 태도(態度)가 너무 심(甚)하다는 것을 불평(不平) 비스듬이햐는 반감(反感)석긴 우리일행(一行)의 말소리를 들엇다)이제야 그들은 열(列)를 지어 물에 들기 시작(始作)하고 그들의 독특(獨特)한 노래가 화창(和唱)된 다 저러케 노호(怒號)하는 그들이 순식간(瞬息間)에 화기만만(和氣滿滿)하게 그 가곡(歌曲)에다 우리를 환호(歡呼)하는 기사(歌詞)를 담는다.

도막도막 “저들이 어느 대학생(大學生)들 일가” 하는 소리가 들렷든 것이니 우리는 그들의 작업(作業)을 충분(充分)히 견학(見學)할 수 잇엇든 것이다. 나는 새삼스러히 그들의 순박(純朴)한 감정(感情)의 발로(發露)를 회상(回想)한다.

이러한 것은 나의 체험기억(體驗記憶)의 단편(斷片)이려니와 초행(初行)인 우리일행(一行)의 견학(見學)이나 숙사(宿舍)에 대(對)하야 간접직접(間接直接)으로 염려(念慮)하여주든 그들 인사(人士),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마저 환영(歡迎)하고 그 석상(席上)에서 

“감격(感激)”에 넘치는 숨김없는 간담(懇談)과 가곡(歌曲)이 서로 밧구어 지든 것, 요적(寥寂)한 고도(孤島)의 밤거리에 객사(客舍)를 차즌 우리 일행(一行)이 오(五), 육일(六日)을 지난날 다시 가는 비나리는 산지항(山地港)에서 방가(放歌)와“오돌또기”(제주민요(濟州民謠))를 화창(和唱)하면서 떠나든 때 그들 제주인사(濟州人士)가 만세(萬歲)를 높이 불너 우리를 보내주든 감격(感激)에 넘치는 기억(記憶), 아즉도 나의마음 구석에 남어잇는 순정(純情)을 뛰놀게 하고야만다. 오즉 그들의 순정(純情)만이 그러케 하는가 보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9-07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2
첨부파일
675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십(十) 대륙성(大陸性)과 소박성(素朴性) 하(下)(1937년 09월 07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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