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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濟州島)의 자원개발(資源開發) 축항촉진(築港促進)이 간요(肝要)(1938년 09월 18일) 3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그리고 이와같이 자원(資源)에 적당(適當)한 제주도(濟州島)가 하고(何故)로 불우(不遇)의 지위(地位)에 잇는가 하면 그는 항만(港灣)에 적절(適切)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自己)는 제주(濟州) 한림(翰林) 모슬포(毛瑟浦) 서귀포(西歸浦) 성산포(城山浦)의 오개항(五個港)에 대(對)하야 자세(仔細)히 시찰(視察)하엿을뿐 아니라 전문가(專門家)로 하여금 일일(一一)히 현지(現地)에 대(對)하야 설명(說明)까지 드럿다 그 결과(結果) 자기(自己)로는 의외(意外)의 사실(事實)을 발견(發見)하엿다 즉(卽) 성산포(城山浦)를 제(除)한 타(他)의 사항(四港)은 전부(全部)항내(港內)가 얏흐고 해저(海底)는 암반(巖盤)으로 되엇다고 한다 큰 선박(船舶)을 입항(入港)시키는데는 모든 해저(海底)의 암반(巖盤)을 폭파(爆破)하야 대기술(大技術)과 대공사(大工事)를 요구(要求)하게 된다 금후(今後)항만(港灣)에 대(對)하야는 총독부(總督府)본도(本道)에서 연구((硏究)하고 우(又)제주도(濟州島)자신(自身)도 협력(協力)하야 제주도(濟州島)개발(開發)의 근저(根底)인 항만(港灣)에 광명(光明)을 여(與)하지 안흐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제주도(濟州島)의 광(廣)은 향천현(香川縣)과 거의 동양(同樣)인대 인구(人口)는 그 사분일(四分一)의 이십만인미만(二十萬人未滿)이다 그리고 오만인(五萬人)은 외출노동자(外出勞働者)인데 그는 장성(壯盛)한 남녀(男女)이므로 단적(端的)으로 말하자면 제주도(濟州島)에는 노력(勞力)이 부족(不足)하다고 말할수 잇다 이것이 제주도(濟州島)미개발(未開發)의 근저(根底)로 되고 잇다 그러나 서호리갱생부락(西好里更生部落)고 같이 자기(自己)들의 토지(土地)는 자기(自己)들의 손으로 개발(開發)한다는데에 자각(自覺)한다면 지금(只今)의 외출노동자(外出勞働者)들도 제주도(濟州島)개발(開發)에 노력(努力)할 여지(餘地)기 충분(充分)히 잇다고 생각한다 공업(工業)에 잇어서도 한림(翰林)의 죽중관힐공장등(竹中罐詰工場等) 일층(一層)확대(擴大)할 여지(餘地)가 잇다 제주도(濟州島)우(牛)에 대(對)하야 자기(自己)가 특(特)히 느낀 것은 조선(朝鮮)본토(本土)와 동일(同一)방침(方針)으로 가는 것은 문제(問題)라고 생각하는 바로서 제주도(濟州島)우(牛)는 주(主)로 유우(乳牛)의 공업화(工業化)급(及)식육용(食肉用)피혁이용등(皮革利用等)으로 셀수가 잇지 안흘가 생각되므로 다시 전문가(專門家)로 하여금 연구(硏究)케할 생각이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8-09-1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2
첨부파일
700.제주도(濟州島)의 자원개발(資源開發) 축항촉진(築港促進)이 간요(肝要)(1938년 09월 18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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