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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濟州島) 벳치 한발(旱魃)로 대풍작(大豊作)(1939년 09월 03일)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도(濟州島) 벳치 한발(旱魃)로 대풍작(大豐作)  

 

제주도농회(濟州島農會)서는 총독부(總督府)의 적극적(積極的) 지도하(指導下)에 동도(同島)에 종자용(鍾子用)인 에아리벳치를 재배(栽培)하고 잇는데 본년(本年)은 한천계속(旱天繼續)의 호조(好調)로 삼천오백석(三千五百石)에 달(達)하야 조선내(朝鮮內) 벳치종자(種子)의 수요(需要)는 일천오백석(一千五百石)임으로 이중일부(中一部)를 내지(內地)에 이출(移出)해도 일년(一年)의 수요량(需要量)을 훨신 지월(持越)시키게 될터이고 벳치의 종자난(種子難)은 점차완화(漸次緩和)됨과 공(共)히 농민(農民)에게도 전년(前年)의 반가(半價)의 오십원가량(五十圓假量)으로 배급(配給)하기로되엇다 일방(一方)사트윗켄종자(種子)의 수확고(收穫高)는 삼천삼백석(三千三百石)으로 보통작일부(普通作一部)를 제(除)하고 거의 내지(內地)에 이출(移出)되엇는바 가격(價格)은 전년(前年)의 육십원(六十圓)에 대(對)하야 삽오원량(卅五圓量))이엇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9-09-03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7
첨부파일
724.제주도(濟州島) 벳치 한발(旱魃)로 대풍작(大豊作)(1939년 09월 03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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