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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입어 다시 되풀이하다(海女の入漁 再び蒸返す)(1931.03.26)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해녀의 입어(海女の入漁)

다시 되풀이하다(再び蒸返す)

해초업자로부터 간섭이 들어와 문제는 다시 확대하다

(海草業者から橫槍が入り 問題は更に擴大す)

 

  1천6백 명의 해녀의 사활문제로서 주목되었던 경남의 해녀 입어문제는 부산 동래 울산의 1부2군의 연안 지역 어업조합에 해녀를 가입 시킬지 않을지가 문제의 분기점이 되어 대정14년에 협정된 계약의 존속을 희망하는 전남 측의 주장을 일축한 경남은 끝까지 경남 자주의 방침 하에 퇴진하기로 되어 있어서 4월부터 8월까지 채집기에는 명물의 제주도 해녀의 통어도 없고, 문제는 이것으로 본년만은 수습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으로 경남 자주정책에 간섭이 들어와서 다른 입장에서 입어문제가 다시 되풀이 되었다. 원인은 대정10년에 협정 당시 전남 측은 해녀를 경남은 해초지역을 가지고 모여서 쌍방 걸어왔고, 더욱이 채집한 해초는 예부터 거래관계로 해서 부산의 해산상(海産商)이 25만원의 회사를 조직하여 해초의 독점판매를 대행하고 대판 시장에 팔아서 이익의 2분을 해녀조합에, 마찬가지로 2분을 지역 어업조합에, 4분을 회사가 징수하는 것으로 협정을 하여 다년의 현안이 해결되었는데, 이번 경남측이 해녀 입어에는 반드시 채집지의 지역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하여 전남과 관계를 끊고 최후에는 1명의 해녀도 제주도에서 통어하러 오지 않아서 채집 해초는 시장에 가져가지 못해 그 결과는 해초판매로 살아가고 있는 회사가 대놓고 직접 대타격을 입고 처량하고, 한 조각의 포말 회사화한 괴로운 처지에 서게 되어 24일 동(同) 사장 산본리길(山本利吉), 취체역 풍전총구랑(豐田惣九郞), 감독역 서야위작(西野爲作) 각 씨는 도변(渡邊) 도지사와 회견하여

  만약 제주도 해녀의 통어가 불가능하게 된다면 대정10년 당시 협정서 체결의 취지는 모조리 잃게 되어 사태는 협정 전의 당시로 역전되는 처지에 이르게 되므로 경제상 또는 생산 정책상 중대한 악영향이 일어날 두려움이 있으므로 해초회사 설립의 동기와 이유를 참작하여 신중히 고려되었으면 한다.

라고 진정하였으며, 문제는 경남 당국과 각 어업조합의 태도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미묘한 점에 치우쳐 왔다.(부산)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1-03-26
저자명
경성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8
첨부파일
310326_084(경성일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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