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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제1수사원 2명 소식 끊기다(更に第一搜查隊員二名消息を絕つ)조난의 전천 군 여전히 행방불명(遭難の前川君依然行方不明)불안이 심해지는 한라산(不安は募る漢拏山)(1936.01.06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게다가 제1수사원 2명 소식 끊기다

(更に第一搜查隊員 二名消息を絕つ)

조난의 전천 군 여전히 행방불명(遭難の前川君依然行方不明)

불안이 심해지는 한라산

(不安は募る漢拏山)

 

  (광주전화) 제주도 한라산 답파 중 행방불명이 된 성대 산악부원 전천지춘(前川智春)의 수사는 3일 밤을 보람 없이 보내고 4일 아침 일찍부터 대원 일동과 관서학련 일행은 협력하여 비장한 수사를 계속했지만 여전히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고, 게다가 제1수사대원 2명이 소식이 끊겨 불안이 더해지고 있다. 제1수사대원 2명(성명 미상)은 조난 지점이라고 생각한 일대를 수사하고 있었는데, 4일 심야에 이르러 아무런 소식이 없어 수사대 본부에서는 절대 안전하다고 자신을 갖고 있고, 심설(深雪) 5척 위에 조만간 심한 눈보라가 내습할 것이라서 도모하기 어렵고, 통신연락기관도 절무(絶無)의 위험지대이므로 남은 답사대원은 불안 초조의 마음에 놓여 있다. 

 

  제2수사대 4일 밤 출발했다(第二搜査隊 四日夜出發す)

   

  (광주전화) 전천(前川) 군의 조난 및 수사 제1대 2명의 행방에 대해 마음을 두게 되어 4일 밤 다시 제2수사대가 제주읍발 장소로 왔지만, 그 대열은 5일 정오경 현장에 도착 예정이었는데, 그 대열은 대원 3명, 응원대 9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당히 대담하게 수사를 하여 밀림 깊게 들어갈 예정이다. 

  

  제3수사대(第三搜査隊)

 

  (광주전화) 4일 조조의 수사는 어떤 단서도 없이 5일 아침에는 천(泉) 대장 외 대원 2명, 학생연맹 응원대 5명 경찰관 4명으로 수사대를 조직 제3대로서 출발했는데, 더욱이 제주읍 소방조원도 응원 출동했다.  

 

  전천(前川) 군의 부친 목포로

  

  제주도 한라산에서 눈보라로 인해 조난된 성대 산악부 전천지춘(前川智春)의 부친 경성원정1의 27 전천병원장 전천중춘(前川重春) 씨, 숙부 지천무(池川茂) 씨는 고미(高尾) 성대 서기와 함께 4일 오후 10시 50분발 열차로 슬픈 마음으로 목포로 급행했다. 더욱이 성대 의학부원 후등무(後藤武) 씨는 5일 오전 7시 45분발 열차로 학생 곡천(谷川)과 함께 제주도를 향했다. 더구나 금강산 등산 중인 성대 교수 중촌양조(中村兩造) 씨는 5일 오후 9시 반 귀성, 제주도로 향했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6-01-06
저자명
경성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5
첨부파일
360106_242_243(경성일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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