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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회문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5. 회문: 回文 右回文段 別無他事 惟我曾祖父母 墓所在於今方員 自三年前守護未分明 是如可 今八月所聞 則望後不掃 故曾 孫金光太卽選掃墳是在 三年前守護 (孫)大靜居 名不知朴哥者 以倉川里居○別監但(伹)爲投致 今月望後來慘是○○(情)勢伹(但)勿無心之地. 甲辰九月初十日古城流水金堂○

下洞洪○○於音金生員 趙堂○高○○

회문: 이 회문은 다른 일이 아니요 오직 내 증조부모의 묘가 금방원(창천리 지역의 지명?)에 있는데, 3년 전부터 수호하는 사람이 분명치 못하다가 금년 8월에 소문을 듣기를 보름이 지났는데 소분하지 않았다 하였으므로 증손자인 김광태를 선정하여 소분하게 하였음. 3년 전에 수호하는 사람의 손자가 대정에 사는데 이름을 알지 못하는 박가라는 사람이며, 창천리에 거주한다 하니, 별감께서 다만 알려 주십시오. 이달 보름이 지나고 와서 보니 참혹하였으며 정세가 그저 무심할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갑진년 9월 초10일 고성 류수암 김당○하동 홍○○어음 김생원 조당○고○○

*回文(회문)은 여럿이 돌려보도록 쓴 문서를 이른다. 회장(回章)이라고도 한다.양씨 집안의 문서인 차정첩에서 양제성은 동치 12년(고종 10년 1873)에 예방별감에 임명되었고, 양백흥은 광서 19년(고종 30년 1893)에 예방별감과 예방좌수로 임명된 것과 견주어 보면, 이 문서가 작성된 甲辰(갑진)은 광무 8년(1904)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아마 창천리에 거주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박가(朴哥)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하며 보낸 문서로 추정한다. 이 문서를 보낸 사람으로 추정되는 ‘유수암 거주 김당○’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의 이름이 보이는데 아마 이 문서 내용의 증인들인 듯하다.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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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첨부파일
05. SAM_652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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