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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명문(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6. 明文(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乾)隆參拾陸年辛卯拾壹月貳拾陸日李德老處明文.右明文事段 當此凶年 還上多食後 備納出處無路○○[/李]德老處 正木貳疋半貸出 無弊官納後 価本段○[/勢]不得已 矣父衿得 ○圓田員 粟種壹斗捌升付田 四○[/標]段東南小路西金進甫田北姜德太田 標分明田庫乙 永○[/永]放賣爲去乎 若有子孫族類中 雜談之弊是○[/去]等 持此文記卞正事.田主姜召吏[/史] (우수촌)筆執品官李正喬 (수결)건륭 36년 辛卯(영조 47년 1771) 11월 26일 이덕로에게 준 명문.이 증명서를 준 일은 흉년을 맞으니 환상미를 많이 빌어다 먹은 뒤에 갖추어 납부할 것이 나올 길이 없었다. ○[이]덕로에게 정목 2필 반을 빌려다 폐단이 없이 관아에 납부한 뒤에 값은 형세가 부득이하여 나의 아버님의 깃으로 얻은 ○원전원(○원전지경)에 있는 조의 씨앗 한말여덟되지기 밭으로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과 남쪽에 소로 서쪽에 김진보의 밭 북쪽에 강덕태의 밭으로 경계표지가 분명한 밭이며 영영 내놓아 팔았으니 만약 자손들이나 가족의 무리 중에 잡담하는 폐단이 생기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바로잡을 일이다.밭주인 강소[사] (오른쪽 손가락 마디를 그림)쓴 사람 품관 이정교 (수결)*3행의 마지막에 쓴 글자는 目(눈 목) 자를 변으로 하여 오른쪽에 殳(창 수) 자를 붙였다. 없는 글자다. 문서의 격식에 ‘段’ 자를 써야 할 곳이다. 4행의 아홉째 글자는 알 수 없다. 혹 侊(성한 모양 광), 侁(걷는 모양 신), 倪(어린이 예) 등의 글자와 오양이 비슷하게 보인다.*還上(환상)은 예전에, 각 고을의 사창(司倉)에서 봄에 백성에게 빌려주었던 곡식을 가을에 받아들이던 일이다. 그렇게 활용하는 곡식을 환곡(還穀)⋅환미(還米)라 하였다.*4행의 ‘○圓田員(○원전원)’의 ○은 글자 모양으로 추정하면, ‘侊(크다 성대하다 광)’. ‘佬(큰 모양 로)’, ‘侁(걷다⋅다니다 신)’ 등으로 읽을 수 있겠다. 지명으로 보인다. 다른 문서에 ‘花圓田員’, ‘花園田’, ‘花元田이’ 등으로 표기된 지명이 보인다.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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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8
첨부파일
06. SAM_658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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