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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상창리 양씨가 고문서: 명문(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36. 明文(빚갚음으로 경작지를 양도한 증명서) 同治八年己巳十一月初五日梁濟英處明文右明文事段 去乙丑年十月分 正木拾貳疋貸用是加尼 至今不報 則勢無奈何 外家 衿給田 白旨員 皮牟六斗付 永 爲放賣 四表[標]段東高大億田南梁哥 田西右人田北吳處興田 表分明是遣 田 庫永賣 是後有雜之弊是去加 以此 憑考事. 筆執 姜用磻 (수결) 田主 李壽元 子龜錫代着 (수결) 동치 8년 기사(고종 6년 1869) 11월 초5일 양제영에게 준 명문. 이 명문의 일은 지난 을축년(고종 2년 1865) 10월 즈음에 정목 12필을 빌려서 사용하였더니 지금가지 갚지 못하였는데 형세가 어쩔 수 없어서 외가에서 몫으로 지급해준 밭 백지원(백지 지경) 겉보리 여섯마지기를 영원히 내어 팔았고 사방 경계표지는 동쪽에 고대억의 밭 남쪽에 양가의 밭 서쪽에 우인(이 사람 양제영)의 밭 북쪽에 오처흥의 밭으로 경계가 분명한 밭을 영원히 팔았으며 이후에 잡된 폐단이 있거든 이것으로 빙고할 일이다. 쓴 사람 강용반 (수결) 밭주인 이수원 아들 구석이 대신 쓰다 (수결) *1행의 ‘十一月’은 ‘二月’로 보이기도 한다. 또 3행의 첫째 글자는 土(흙 토)의 왼쪽에 丶(점 주) 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문맥으로 추정하면 正(바를 정) 자라고 본다. 다른 문서에도 五(다섯 오)를 쓸 자리에 正 자를 쓰면서 이 글자의 모양으로 쓴 것들이 있다. 아마 正 자의 예서체를 비슷하게 모방한 글자로 보인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9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7
첨부파일
36. SAM_656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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