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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 순례(5) (濟州島めぐり(五))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조선신탁 대표이사회장 한상용 (朝鮮信託取締役會長 韓相龍) 한림 읍내에서 자동차로 서쪽으로 1시간 반을 달리면 한림이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는 교토(京都)의 죽중 신태랑(竹中新太郎) 씨가 경영하는 통조림공장이 있어서 쇠고기, 완두, 고등어 통조림을 제조하고 있다. 완두는 알래스카종을 이식해서 농민에게 재배시켜서 그것을 가지고 통조림용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완두는 조와 함께 2모작하는 것이어서 별도로 비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1단보의 수확은 25원(보리의 약 3배)라고 한다. 동 공장은 개장 후 5년이 되어 목하 완두콩통조림생산량 1개년에 8,9천 상자(1상자 48개)이며 현재는 오사카(大阪)로 보내고 지나(중국), 미국 방면으로 수출하며 때로는 경성으로 직송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내지로 보내서 조선에서는 재이입을 하는 모양이다. 직공은 거의 조선인으로 여공 75명, 남공 20여명, 임금 1일 30전 내지 70전이다. 또 쇠고기통조림은 8천 상자를 제조해서 오사카로 보내고 있는데 본 사업은 도내에 있어서 유망한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모슬포 읍내를 서로 5리 떨어진 구대정군, 현재의 대정면에 있다. 해빈에 면해 있고 인구 2천명, 그 중 내지인 13명이다. 이곳에는 내지인의 작업에 관련된 소라통조림공장 2개소 있어서 연산액 7천 상자라고 한다. 감산리 구대정군에 속하며 지금은 중면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곳에는 안덕소라는 소가 있어서 사면은 암벽으로 둘러싸여있고 속에 맑은 물이 가득 차 있고 산은 비자나무 그 외 수목 울창해서 정말로 경취가 풍부하고 풍경 절가, 도내에서 굴지의 명승일 것이다. 이곳은 대정면에서 동남 2리반에 있다. 서호리 섬이 우면에 있고 모범부락으로 이름이 높다. 호수 2백호, 사설수도를 가지고 주민은 모두 근면하다. 근래 자력갱생의 진흥회를 설립해서 농업에 종사하고 혹은 금주를 단행, 저축의 장려, 혹은 관혼상제의 경비를 절약하는 등 정말로 모범적 농촌이라 말할 수 있다. 읍내에는 개량서당이 있어서 생도 50인에 대해 한문, 산술, 국어를 교수하고 있다. 4년 졸업인데 교사는 보통학교 졸업생 2명을 가지고 신식 교수를 행하고 있다. 여기는 읍내와 22리 떨어지는 지점에 있다. 천지연 서호리에서 중도에 있는데 여기에는 폭 5척, 높이 3척의 큰 폭포 그 외 3개의 작은 폭포가 있으며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정말로 기관이라 할 만하다. 서귀포 당지는 읍내를 지난 22리에 위치하고 제주의 중앙에 해당한다. 읍내에서 자동차로 6시간에 도착한다. 여기는 도내유수의 어항으로 인구 2천명, 그 중 내지인 3백명으로 계산한다. 대정4년(1929년) 1만5천원을 가지고 항내 서방에 방파제를 축조했다. 항구 내는 물이 얕아서 3,4백톤 이상의 선박의 입항은 불가능하다. 당지는 어획물을 모아서 얼음을 채워서 각지로 송출하고 있다. 성산포 구정의군, 지금의 정의면이다. 어항이며 인구 7백5십명 중 내지인 백3십명, 제주읍을 지나 동남 12리 반, 동지역에는 내지인 경영의 요오드공장이 있으며 요오드는 감태(해초)에서 이것을 채취한다. 감태에는 75의 요오드 함량 있으며, 그 외 화약의 원료도 함유하고 있다. 1년 생산량은 5천 파운드이다. 일본의 요오드 연산액은 약 4십만 파운드이며 수요량은 2십5만 파운드, 남은 양은 외국으로 수출한다.(사진은 제주의 천지폭포)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3-06-26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6
첨부파일
118_19330626_233(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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