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황폐화시킨 희유의 맹태풍 (濟州島を荒した稀有の猛颱風)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최강풍속 36미터 총우량 1평당 3석 8승(最强風速三十六米總雨量一坪當り三石八升) 월초 경 오키나와(沖縄) 부근을 서서히 북진하고 있던 맹렬한 태풍은 2일에 이르러 급속히 그 속도를 증가해서 동지나해를 북행해 와서 3일 낮쯤에는 제주도의 남동 약 100키로의 해상에 이르러 더욱 북진을 계속하고 이날 밤 동 섬의 동단 성산포 부근을 스쳐지나 제주해협을 경과해서 여수방면에 상륙해서 조선을 종단 북상해서 4일 아침에는 충청북도를 덮치고 나아가 조선의 한가운데를 1시간 약 30킬로의 속도로 북북동행 해서 같은 날 중에 조선의 북동해상으로 나가서 일본해 북부에서 바다에 매우 거친 풍랑을 일으키고 북해도 방면으로 나갔다. 이 태풍은 오키나와 방면에 있었을 당시 그 기압의 중심기압이 710밀리 이하의 심도로 드물게 보이는 우세한 것이었다. 북상하면서 조금 그 세력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제주도 부근을 통과할 때는 그 중심은 여전히 720밀리여서 본 도(島)는 2일 저녁부터 폭풍우가 치고 3일 아침에 이르러 그 세력은 점점 맹렬해서 바람의 소리는 숫사자의 포효를 상상하게 하고 무섭게 나무의 푸른 잎은 쥐어뜯기고 한여름 시기인데 겨울 가로수와 같고, 하변에 있는 민가의 가옥은 날아가고 마루는 파손되고, 호우가 억수로 쏟아져 가는 곳마다 틈 있는 곳의 옥내에 물이 차고 해상으로 소용돌이치는 노도의 음향은 불안에 부들부들 떠는 읍민의 간담을 한층 더 얼어붙게 하고 1시간의 폭을 두고 지옥을 왔다갔다 반복했는데 저녁시간에 바람이 조금 조용해지고 비가 또한 조금 잦아들어서 도민은 겨우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앞의 내용에 관해서 측후소의 관측을 들어서 보면 최강풍속은 3일 오후 2시 36미터로 당 지역에서는 측후소개시이래의 기록이다. 비는 2일 밤부터 3일 밤중까지 계속되어 그 양 168밀리로 평당 환산하면 1평당에 3석8승 이라는 호우이다. 가장 강했던 것은 이 날 정오경부터 오후 2시경까지로 이 2시간 중에 약 77밀리(평당 1석4두 남짓)의 비가 내렸다. 이 때문에 하천은 증수해서 산지천은 탁류 흘러넘치고 이 하천 안으로 피난중인 작은 어선의 대부분은 무참히 파손되어 산지항 내에 계류되고 있다. 발동선 등도 암석제방에 밀려 올라와서 거의 분쇄되는 등 그 피해는 적지 않았다. 당일은 경관 및 소방대원 필사의 활동으로 읍내에서는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게다가 섬 당국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농작물의 피해도 의외로 적었다는 것. 이것은 폭풍우의 강함에 비해서는 그 기간이 짧았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전도(島) 안에서는 선박 그 외의 피해는 상당히 있어서 목하 경찰서 및 섬 당국에서 인터뷰 조사 중이다. 또한 목하 태풍기로 제2, 제3의 태풍이 계속 남양방면에서 발생하는 모양이며, 이곳 당분간 방심도 낙관도 허용되지 않는다(판고고).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3-08-10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44
첨부파일
128_19330810_441(목포).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