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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의 자랑 법환리농촌진흥실행조합 (濟州島の誇り法還里農村振興實行組合)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업적 착착 오르다(事績着々として揚る) 법환리 1구장 강종남 씨(사진) 법환리 2구장 현지용 씨(사진) 아름다운 봉우리 한라산만큼 제주의 자랑은 없다. 산록에 피는 빨간 동백과도 닮아서 아름다운 삽화가 불쑥 귀에 들어와 지난 건국대제날 표창 받아 다액의 보조금을 하부 받은 우면 법환리 농촌진흥실행조합이야말로 우리들 제주도민의 자랑으로 삼기에 모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동 조합이 오늘날 영예를 차지하기까지 조합원의 노력, 그중에서도 동 조합을 오늘날의 견실한 것으로 만들어낸 중견인물 법환리 1구장 강종남 씨, 동 리 제2구장 현지 용 씨의 분려노력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래 동 부락은 흔히 이촌(관리출신지)으로서 약 20년 전까지는 촌민 대체로 사치해서 근로를 피하고 허영심 강해서 도식, 음주, 도박, 미신 등의 악풍에 젖어 불온한 청년 많아서 경찰당국의 주목의 표적이었는데 대정10년(1921년)경에 면의 권유로 민풍진흥회를 조직해서 민풍의 개선을 도모하려함에 있어서 동 리의 중심인물인 강종남 씨와 현지용 씨는 솔선해서 찬동하고 농촌진흥책에 부심해서 협심동력 열성을 가지고 부락민의 지도를 맡아서 밤낮으로 그 각성을 촉구한 결과 점차 부락민이 일치단결을 보고 그 후 민풍개선, 농사개량을 표어로 해서 이것에 전력을 기울여서 섬과 면의 지도를 같이 받아 그 이익실적을 올리고 지금은 도내 드물게 보이는 모범부락으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이것이 지속을 한층 거양해서 소기의 목적을 빨리 달성시키기 위해 소화7년(1932년) 12월 면에서 동 부락을 자력갱생 특별지도부락으로 선정했는데 작년 6월 농촌진흥실행조합인 단체로 조직을 개칭해서 현인불발, 부락민의 의기와 열의는 진실로 자력갱생의 의기와 열의가 불타서 양양한 전도를 목표로 해서 한결같이 향상발전의 일로를 취했던 것이다. 현재 조합원은 4백6십5호, 기본재산으로 부동산 전(田) 3천2백7십8평(견적 가격 1백6십5원) 임야 4천5백7십6평(견적 가격 2십3원) 동산현금 4천백6십4원을 가지고 있다. 이 중○3천4백3원은 개량서당유지경비 및 향사건축기금으로 충당하기위해 별도저축하고○4백십3원은 장래 부락선박대기실 수축기금으로 매년 1백4십원 배당해서 별도 적립하고○2백4십원은 공동 우물수선기금으로 하고○1백8원은 부락기본금으로서 모두 예금 중이다. 다음으로 동 조합의 시설사업 및 그 성적을 서술해 보면 도로개수 도로의 편의증진의 필요를 자각해서 대정12년(1923년)경 부락의 도로를 확장 개수할 계획 착수해서 지금은 전부락 가는 곳마다 폭 3칸으로 확장개수해서 제주도 일주도로 동 부락 담당구역 및 동 부락도로의 유지 수선을 완전히 함과 동시에 부역을 공평하게 정하기 위해 소화3년(1928년)경 부락민의 결의에 의해 도로조합을 조직해서 매년 1호 당 8십전 씩 철수해서 이것을 가지고 도로 수선구역을 6구로 나누어 1구에 대해 청소자(부락민) 5,6명에게 청소를 시켜 상시 도로수선을 행하게 해서 종래보다 그 성적양호해서, 종래 1호에 부가한 것이 1개년을 통해서 2십일 이상 출역의 품을 겨우 80전으로 면제되어 소담경감의 편법이 되었었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4-03-14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6
첨부파일
137_19340314_131133(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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