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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일주하고(1) (濟州島を一周して(一))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출가노동 도민의 송금 놀랍게도 연 1백만원(出稼ぎ島民の送金なんと年に百萬圓) 중전 생(中田生) 제주도시찰 본도(道) 도회의원 일행은 26일 아침 9시 어업단속선 무등산환으로 야구(野口) 부윤, 정수(井手) 내무과장, 산본(山本) 본사 주간 등 수 씨의 전송을 받으며 출범, 해상은 지극히 평온했지만 뱃멀미를 두려워해서 침대로 기어들어간 자, 혹은 무전실에서 무전송수 설명을 듣는 자 등 있으며 오헌창 씨는 김경택 씨를 상대로 바둑에 열중, 정오 갑판위에서 중식을 마쳤을 때 재목(才木) 선장으로부터 무등산환의 사명, 업적 등을 청취했다. 그때까지는 좋았는데 암운저미하고 점차로 파랑 높고 옆으로 너울을 받아 롤링 적지 않게 되어 동 선 무전기수 고천(古川) 씨의 특별한 후의로 먼저 다음과 같이 제1신을 타전 해상 평온해서 일행 건강하다. 추자도 시찰 예정을 변경해서 곧장 산지로 향한다. 오후 7시 착 예정 하루 종일 침대에 틀어박혔던 기자도 뱃멀미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어서 갑판위에 나와서 추위를 견딘다. 이재혁, 지정선, 청수(清水) 서기 3 씨는 창백해져서 토할 것 같은 모습, 배의 동요에 두려움을 품었던 일행은 추자도 시찰의 예정을 변경해서 곧장 제주항으로 향해서 저녁 7시 착, 전구(田口) 도사(島司)를 비롯해 관민유지 다수의 환영을 받으며 여관 두 곳에 나누어 숙박, 날이 밝자 27일 밤부터 내린 비는 바람을 불러 일행의 시찰에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했다. 자동차 4대에 나누어 탄 일행은 오전 9시 40분 도청 도착, 회의실에서 전구 도사로부터 도세일반을 듣고 시찰에 대한 예비지식을 길렀다. 제주도는 면적 1백2십만리 남짓, 홋수 4만7천7백호, 인구 약 2십만명으로 가가와현(香川県)의 면적에 필적하고 있는데 내지 출가노동자가 많은 것은 전남 제일로 그 수 4만5천명, 이것은 호황 때 내지 임금의 고율을 노려서 속속 출가노동하러 갔던 것이 관습이 되어서 현재는 극도로 도항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상당한 출가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농경지는 헛되이 황폐해서 사상악화한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지 도항자가 작년 중에 송금한 금액은 우편환만으로 6십8만원에 이르고 있어서 대략 1백만원은 될 것이라는 도사의 이야기다. 그 반면에는 14호의 홋수를 가지는 혹은 부락에서 14명 내지로 도항해서 3개년에 겨우 합계 30원을 송금하는 등의 예가 있어 도항의 악습을 타파하는 일에 섬 당국은 매우 고심을 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 도민은 매우 불만을 품고 있는 모양으로 섬 당국의 가장 큰 고민은 이와 같은 도항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은 좋지만 흉작 때의 도(島)민의 생계이다. 그러나 도민은 근면해서 부작 시에 충분한 주의와 각오를 가지고 있는 것은 본도의 자랑이라고 도사가 보증하고 있어서 일행은 이 정도의 개념을 받고 드디어 예정대로 서쪽돌기로 일주 시찰의 길에 들어선다. 도청에서는 안내자로 복도(福島) 재무주임, 하야(河野), 장, 김 각 속(屬) 4 씨가 제주읍 출신인 도의 이윤희 씨와 함께 일행에 합류해서 총세 21명이 된 셈이다. 사진 무등산환의 갑판에서 재목(才木) 선장의 설명을 듣는 일행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4-04-03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5
첨부파일
138_19340403_124(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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