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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일주하고(2) (濟州島を一周して(二))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진홍의 동백꽃은 손짓하여 부른다 여자가 아니고는 어쩌지 못하는 섬(眞紅の椿はまねく 女ならでは暮れぬ島)중전 생(中田生) 제주도에 일보를 내디디면 누구나 먼저 첫 번째로 느끼는 일은 도로가 나쁘다는 것이다. 전도(島) 일주도로는 연장 50리 남짓인데 10년 이래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방임되어 있던 것을 자력갱생이 주장된 결과 각 부락민이 솔선해서 부락도로의 수축에 열심하게 되어 다소 개선된 것 같지만 그래도 도로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약간 피하고 싶은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섬 당국에서는 도로개선을 위해 우승기를 만들어 성적 우수한 부락에 수여할 계획을 실시해서 온통 독려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힘을 들이고 있는 것은 제주읍에서 서귀포로 가는 횡단도로(연장 약20리)이며 소화7년(1932년) 이래 착공해서 미완성인 약 2리가 준공되면 도교통사상에 획기적인 일획을 그을 것이다. 쏟아지는 폭우 속을 4대의 자동차에는 각 한사람씩 도속(屬)이 함께 타고 있어서 이것저것 설명하고 질문에 답한다. 한라산은 밀운에 가려져서 그 용위를 보이지 않는데 차창에 전개하는 비에 운치 있게 보이는 풍광은 실로 단념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 돌담으로 이어진 밭(돌은 전부 용암이다)은 여행객의 눈에 비치는 이풍경의 하나이며 실로 장관이다. 밭이라고 하는 밭은 이 용암의 돌담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섬 전체가 일대 방목장이기 때문에 방목하는 우마가 밭을 망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이라고 들었을 때는 모두 과연하고 수긍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섬의 진귀한 정경을 좀 소개하면 온돌과 그 지붕, 여자와 그 풍속 등이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한라산은 구(舊)분화산으로 섬은 그 기슭에 상당하므로 섬 전체가 용암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풍부히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온돌은 대부분 돌과 흙과 반반으로 만들어서 튼튼한 것으로 이것은 일면 바람이 강한 관계라고도 생각되는데 흙으로 만든 것 보다 내구력이 있다는 것은 첫눈에 알 수 있다. 바람이 강한 결과 지붕에는 반드시 새끼줄로 만든 그물이 둘러쳐져 있다. 마치 적의 눈을 차폐하기 위한 것처럼……그리고 짚으로 엮은 지붕이 아닌 새로 엮은 지붕이 있는 것은 짚이 없기 때문으로 벼가 없는 섬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왕래하는 인간은 여자가 많고 용모는 내지 여자와 매우 닮고 습관도 또 내지인과 닮은 점 많아서 육지부와 같이 머리 위에 물건을 얹지 않으며 또 아이를 업는 것도 내지인과 같은 모양이다. 왜 섬에는 여자가 많은가 하면 출가노동자 대부분이 남자인 점도 이해가 가지만 섬에서 자란 제주여자는 사랑은 커녕 남자 이상으로 일을 잘한다. 밭 경작에서 도로 부역까지 여자 손으로 한다. 여자가 아니고서는 밤도 밝지 않는 지방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제주도는 여자가 아니고서는 어쩌지 못하는 섬이다. 또 동백과 유채 꽃 피는 섬인 제주도는 특히 일행을 놀라게 했음에 틀림없다. 여인의 입술을 생각게 하는 동백꽃은 대목에 무수하게 피어 뽐내며 여행객에게 미소 지으며 손짓하여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일면 거무칙칙한 용암에 점철된 노랑색의 유채꽃도 단념하기 어려운 정취다. 사진 한라산(해발 6천8백 척의 원망)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4-04-04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4
첨부파일
139_19340404_125(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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