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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일주하고(4) (濟州島を一周して(四))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망상인가, 꿈이야기인가 서귀포 원로의 큰 계획(妄想か, 夢物語か西歸浦元老の大計)중전 생(中田生) 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악도로는 진흙탕이 되어 바퀴를 매몰하는 일로 미끄러짐이 지나쳐 자동차의 격동으로 비명을 지르는 일 수차례, 예정대로 6시 서귀포에 도착해서 수십명의 관민유지에게 환영을 받고 장전(長田), 승본(勝本) 두 여관에 나누어 숙박, 8시 요정 사누키야에서 관민유지의 만찬회에 임한다. 자리 정해지고 학조(학교조합) 관리자 천기 증장(川崎增蔵) 씨가 이 지역 관림을 대표해서 환영의 인사를 겸해서 서귀포의 과거, 현재, 장래에 대해 크게 열변을 토하며 설명을 해서 일행의 이해와 도회의 원조를 요망한다고 해서 서방(緒方) 도의가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개연, 선(鮮)내의 아름다운 기녀를 알선해서 일행의 여정을 위로 한다. …◇…서귀포는 어항으로 이름 있을 뿐만 아니라 중원 행태랑(中原幸太郎) 씨의 존재에 의해서도 알려져 있다. 동 씨는 아메리카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재미 30년이 된다는 것을 먼저 초대면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세세히 포부를 말하며 그 의상(意想) 천외해서 모두를 경탄시킨다. 동 씨의 이상은 섬 인구 1백만을 목표로 한라산 중턱에 수도 철관을 둘러서(중턱에 수량 풍부한 음료수 있다고 한다) 그것에서 각 어항 또는 주요부락에 방사선상의 철관을 부설해서 도민에게 음료수 그 외의 용수를 공급해서 서귀포를 단순한 어항으로서가 아닌 섬 유일의 물자가 드나드는 항구로 하기위해 대축항을 완성해서 1만톤급의 선박을 선창에 횡으로 댄다는 것이다. 그 이상이야말로 실로 웅대하지만 수도 부설은 아무튼 1만 톤급 선박을 횡으로 대어서 선창을 만들 물자가 과연 있는가 없는가이다. 아마도 5십년 후 아니면 1백년 후의 꿈일 것인데 지금부터 5십년 후 1백년 후의 대계를 세우고 있는 동 씨의 배짱이 큰 것은 인정을 함과 동시에 동 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서귀포의 큰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 동 씨의 대계에 대해 지역민은 동 씨를 광인 취급해서 뭔가 놀리고 있는 듯한 데 토지의 발전상 매우 유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원(中原) 씨는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어 공공에 기여하는 일을 밤낮 염원하고 있기 때문에…… …◇… 20일 밤 이후 비는 호우와 같이 일행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이 잇따르고 그래도 집결해서 숙소에서 빌린 우산을 받치고 축항시찰, 도내 최대의 어항인 만큼 어선의 정박 많은 항내의 아도(芽島)는 천연의 대방파제가 되어 파괴된 구(舊)방파제도 얼마 없어 준공하게 되며 양항으로서의 서귀포는 금후 점점 발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내 유일의 상수도는 용이하면서도 설비를 갖춰 어부 상대의 요정, 여자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나는 만큼 어항으로서의 서귀포가 이름을 알리는 일이 필연이며 서방(緒方) 도의 여기에 집을 마련해서 은거하고 싶다는 의욕이 일어 열심히 움직인 것 같다. 오전 9시 반 서귀포를 출발한 일행은 밀감산을 견학하고, 밀감이 나무에 달려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으로 경이의 눈을 크게 뜬다. 약 8정보의 밭에는 재래종을 비롯해서 각종 밀감, 네이블 오렌지, 하귤, 비파 등이 있고 도(島)내의 수요에 부족하지 않은 상태이며 밀감 늘어진 섬으로서도 또한 선내 유일무이이다. 사진 해상에서 바라본 서귀포항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4-04-06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8
첨부파일
141_19340406_127(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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