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신문기사」통쾌, 일약해서 면화의 호화면(痛快, 一躍して 棉花の豪華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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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불가능하다고 분발한 구좌면(一昨年まで棉は出來ぬと 頑張つた舊左面)
제주도에서도 면은 불가능하다고 면당국이 노력해온 구좌면이 김녕보교장 성호(城戸) 씨가 그 투철한 연구심과 전신열의의 노력으로 면은 훌륭하게 가능하다는 실지증명을 했는데 그 직후 취임한 고영진 면장은 면화가 국책상의 장려작물이라고 동 면의 부녀자가 비교적 수입 많은 해녀가업에만 전념하고 그러나 계절적 가업이 늘 혹은 기간 길게 휴가날을 보내는 것에서 오는 여폐의 배제를 위해 면작 대확장의 안을 세워 면장 이하 면직원이 제 일선에 서서 초◯각반으로 실지지도에 착수했는데 이 노력은 순식간에 효과를 내서 금후 수년 되지 않아 면화주산의 대면이 될 기초가 확립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