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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60년 이래의 제주호우 (六十年來の濟州豪雨)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농작물 피해 막대(農作の被害甚大)

  지난 10월 25일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에 들어서 극히 맹렬해져 갑자기 범람해서 탁류 무시무시하고 때마침 조의 수학기로 수확해서 건조 중인 것은 거의 떠내려가고 수확후의 면화는 오수에 잠겨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남면의 표선면의 우마는 30여 두는 탁류에 휩쓸려 죽는 등의 참담한 피해상황은 이 곳 저 곳에서 현출되었다. 피해가 가장 심한 지방의 노인에게 물으니 60년 이래 일찍이 보지 못한 호우로 이상한 것은 바람은 이외로 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25일 밤 10시경부터 26일 오전 1시 경까지 겨우 2,3시간에 보통은 고갈해 있을 유명무명의 하천이 굉굉 소리를 내며 범람해서 물 높이는 쑥쑥 증가해서 가장 높은 시각에는 5척 여의 수심을 나타내서 도망가기에 바빴으며 마침내 하천가에 사는 사람에게서 사상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번 호우에 대해 측후소의 관측성적을 전해 듣고 예상하기를 대체로 다음과 같다. 25일 아침 황하, 양자강 사이에 나타난 752밀리미터의 저기압은 북동행해서 같은 날 정오경에는 북동 반도로 진전해서 상해부근에 부저기압을 형성하고 이 부저기압이 동지나해를 동북동으로 진행해 와서 25일 야밤에 제주도 남해안에 상륙해서 섬을 사단내고 조선해협으로 빠져나간 것 같다. 그러나 당시의 모양을 조사하니 부저기압의 중심은 남원면 위미리 부근을 통과해서 한라산의 동허리를 강탈하고 구좌면 송당리 가까운 곳에서 빠져나간 모양이다. 이 중심기압은 752밀리미터로 우세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지만 동해의 온기를 낳고 제주에 상륙했기 때문에 이런 호우를 내렸던 것이다. 나아가 읍내에 있는 측후소의 관측성적은 다음과 같은데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방인 한라산 중턱에서는 족히 2백밀리미터의 강우를 봤다고 예상하고 있다(이 생기(生記))      측후소 관측성적

  최저기압  752,4 미리(26일 오전 1시 반경)

  최강풍속  1초간 16,7 미터(25일 오후 10시경)(풍향 동남동)

  강우총량  142,1밀리미터(20일 오전 10시반경부터 26일 오후4시경 까지)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5-11-14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1
첨부파일
187_19351114_276(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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