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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다시 보다 濟州島を見直す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웅곡 생 (態谷生)

길조 면양번식 멋진 황금과녁(辛先よき緬羊蕃殖 見事金的,)辛先→幸先

상상 이상의 성장분만 (5) 양모국책선에 매진豫想以上の成育分娩 (五) 羊毛國策線に邁進  

  일 년 전 6월 당시 총독 우원 일성(宇垣一成, 우가키 가즈시게)이 제주도를 일주하고 서귀포에서 모슬포로 통하는 가장 완만한 언덕에서 광활한 평야와 천지연, 천제연 폭포 등의 수량이 풍부한 모습을 정신없이 보면서 이곳은 양을 기르기에 좋은 장소다. 이 절호의 장소에 지금까지 양을 사육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물이 있고 평야가 펼쳐지고 기후가 좋은 이곳에 반드시 면양을 키우게 하고 싶다

라는 감상을 피력하면서 우원씨의 남면북양 정책은 더욱더 남면북양을 ◯해 왔다.

  그 후 남(南, 미나미) 총독이 부임하자 이 면양 정책에 각별히 힘을 쏟고 있을 때에 때마침 중일 전쟁이 발발하여 면양 사업은 드디어 국책사업으로서 한층 더 중대성이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에서는 일대 계획을 수립하여 ‘코리데일’종 면양 8만 두 증식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 안의 내용은 농가의 부업으로 5만 두를, 사업가의 경영으로 1만 두를 사육하기로 하고 제1기 계획까지의 ◯10개년에 농가부업으로서 2만 2천 두, 사업가 경영으로 1만 두를 기르게 하고, 제 2기 계획으로는 소화 22년(1947년)부터 31년(1956년)까지 10개년에 부업용 5만 두, 사업경영 3만 두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 또한 농가의 사양에 있어서는 1호에 5두 내외를 사육하게 하여 1만 호에 보급하면 5만 두를 얻을 수 있으며, 사업가는 경영 능력이 충분한 자를 선정하여 유치한다. 그리고 기초 면양으로서 소화 20년(1945년)에 1백 두,(내용 잘림) 

※우원 일성(宇垣一成, 우가키 가즈시게)

※남(南, 미나미) 총독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8-04-25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5
첨부파일
252_19380425_10410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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