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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다시보다 (濟州島を見直す)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웅곡 생(熊谷 生) 어망, 어선에 신공풍(漁綱,漁船に新工風) 소형이지만 포경은 돈통(小型ながら捕鯨はドル箱) (7) 열어라 수산의 보고를((七) 開け水産の寶庫を) 기선저인망 어선의 활약에 의한 원양어업과 손잡고 해양을 개척하는 어◯은 건착망(巾着網)어업이다. 도(道)내의 고등어건착망은 완도군(莞島郡)의 청산도가 대표적이라고 하는데, 해마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류의 변화가 생겼는지 어류가 인류와의 생존 경쟁에서 졌기 때문인지, 아무튼 고기는 연안에는 적어지고 점차 먼 바다로 이동하여 그 근거지도 대흑산도에서 제주도 한림이라는 식으로 가장 외해(外海)에 면한 곳으로 옮겨 왔다. 한림 먼 바다에서 건착망이 고등어, 전갱이 잡이를 시작한 것은 소화 7년(1932년)부터로, 그때까지는 비양도 부근의 바다에서 매해 다량의 고등어와 전갱이가 와 있어도 아는 이가 몇 사람 없었으나 대촌 륭행(大村隆行, 오무라 다카유키)씨가 헤엄쳐 가서 그물을 넣었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그물이 끊어져 흘러갔고, 수산시험장도 같은 그물로 시험하던 중 흘러가버렸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부근에는 상당히 많은 고기가 있다고 했다. 이에 나수조(那須組)가 몰래 와서 한 어기에 170만 미, 38만 원이라는 어획고를 올렸다는 사실에서 각 방면에서 주목하게 되어 근래에는 어기가 되면 사십조(四十組)에서 나온 건착망이 한림을 근거지로 하여 추자도를 중심으로 무안군 대흑산도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축을 연결하면서 본도(本道) 서남부의 건착망 어업진을 강화시켰다. ◇ 그러나 ◯는 언제나 ◯의 아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연안의 고등어와 전갱이를 인간들이 너무 심하게 괴롭혀서 갑자기 총회를 열어 서식지를 몇 군데 옮긴 것이 결과적으로 계속되는 흉어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 대책으로서 현재 강구되고 있는 것이 봉수망(棒受網)이다. 이 봉수망은 정강현(静岡県, 시즈오카현)에서 성행하였고 이두(伊豆, 이즈)에서 ◯◯ 연안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것은 건착망처럼 고등어 전갱이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 어선 두 척이 이 어군을 에워싸서 잡는 어획방법이 아니라 한 척이 먹이를 뿌리면 이 먹이에 몰려드는 고기를 그물로 건져 올려 잡는다. 따라서 반드시 대규모의 어군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에 와 있는 고기를 먹이로 유인하여 잡기 때문에 제주도와 같은 곳에서는 가장 적합하다는 탁상 설계는 충분했기에 수산주임 입화(立花, 다치바나) 기수(技手)가 일부러 내지의 현지시찰에 나섰다.◇ 그런데 그 방법은 ◯에 좋고 최초의 계획에서는 입화씨가 사장인 어업자 몇 사람을 동행하여 섬으로 돌아와 바로 취업한다는 ◯정이 좌(左)(내용 잘림) ※대촌 륭행(大村隆行, 오무라 다카유키) ※나수조(那須組) ※사십조(四十組) ※정강현(静岡県, 시즈오카현) ※이두(伊豆, 이즈) ※입화(立花, 다치바나)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8-04-29
저자명
목포신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7
첨부파일
255_19380429_106107(목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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