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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바다에도 육지에도 대보고가 있는 제주도 시찰(二) (海にも陸にも大寶庫を有する濟州島視察(二) )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3일 오후 제주도 도착(三日午後濟州島着) 특파원 금정신일(今井信一) 조선우편선(朝郵) 경성환의 일등선실에 들어간 나와 동행한 이는 사이토, 오쿠다 두 사람으로 일행이 고작 3명이지만 모두 기발한 특징을 갖고 있다. 연장의 오쿠다(奥田) 군은 지금 45,6으로 보이지만 이미 머리카락은 뽑혀 앞에서부터 벗겨지는 것은 보기 좋지만 머리의 중앙에서 벗겨져 コポ(ボ)─ゴマ?(상우8줄) 정수리에 머리가 없는데 반백의 머리를 염색한 흔적이 있는 것이 보인다.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이 나이순으로는 ‘나’지만, 두 사람이 말하길 아무리 봐도 45세 이상으로 보이지만 모자를 쓰고 있으면 10살 이상 차가 있다고 놀린다. 사이토(斎藤) 군은 젊기도 하고 남자다운풍채도 좋지만, 머리카락은 극단적으로 곱슬거린다. 이런 특징을 가진 선객의 이야기 상대인 다나카(田中) 선장의 몸은 특이하게 작지만 20여 년간의 해상 생활로 좀처럼 빈틈이 없다. 애교스러운 기관장 오노시모(尾之下) 씨, 사무장 고 씨도 말하기 좋아하며, 오다(小田) 일등항해사만이 최근 이 배에 막 들어와서인지 매우 근직하다. 배는 어느새 거제도에 들어와 석양이 가오도(加五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이야기 좋아하는 무리 역시 모두 침상으로 기어드는 그 무렵부터 해상은 농무에 뒤덮여 결국 정선하는 일이 2회. 이튿날 미명에 겨우 거제도를 떠나, 오후 4시에 여수에 도착, 거문도에 도착한 것은 그날 밤중이지만 이 섬은 별보와 같이 20년이래의 어획으로 밤낮없이 매우 북적거리고 달무리(月の輪), 구보타(久保田), 거북이집(亀の家), 와타가베(渡壁), 오이시정(大石亭) 등의 요정에는 80여명의 낭자군이 있지만 그런데도 부족하다는 호경기이다. 드디어 3일째 오전 10시 경에 농무는 거쳐서 어렴풋이 전방에 보물섬이 보이고, 해발 약 7천척의 반도 제2의 한라산은 우뚝 서서 마치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는 듯했다. 섬의 최동단 성산포에 도착한 것은 12시, 마에다 도시로부터 통지가 있어 ?々선(4단 우6)까지 마중 나왔다고 하는 성산포주재소의 야마모토(山本) 순사부장으로 부터 약 1시간정도, 이 지방의 상황을 듣고 배는 북으로 북으로 성내를 향해 파도 없는 고요한 바다를 미끄러져 간다. 때마침 축항 중인 제주항만은 돌제, 매립작업에 바쁜 가운데 경성환은 도착했다. 배까지 마중 온 이시바시(石橋) 서무주임, 호리코시??(堀越?), 본사 요쓰모토(四元) 지국장과 다나카 선장과 함께 상륙, 때마침 마에다 도시도 보여서 회구를 나누고, 우선 어쨌든 이시마쓰여관에 여장을 풀고 가볍게 목욕을 해야겠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8-07-07
저자명
부산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9
첨부파일
5-19280707_070(부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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