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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전부 말한다)처녀항해의 ‘황영환’에서[1] ((濟州島をなに語る)處女航海の"晃永丸"で[一])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전설과 해녀가 사는 섬 제주도 시찰여행(傳說と海女住む島 濟州島の視察旅行) 전략, 자네도 매우 기세 좋게 총선거의 와중에 휩쓸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 좋게 점차로 건강을 회복해서 총선거를 타산지석삼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자네가 자주 말해서 그리움을 갖고 있던 절해고도 제주도다. 자네의 말로 하면 준관(俊寬)이 사는 섬이다. 이번 여행은 부산―제주도의 루트를 가지고 황양기선회사가 신조선 황영환(200톤)의 처녀취항을 따라서 동 회사가 주관하고 그에 부산의 상공회의소 상동맹이 후원하고 단체를 모집한 것이다. 그에 나도 참여한 것이다. 자네가 지도 안에서 찾았던 만큼 나는 자네를 상기하고 이번 여행을 자네를 위해서라도……라고 생각해서 쓰기 시작했다. ◇……◇ 제주도실업시찰단이라는 것이 단체의 이름이다. 3월 25일 오전 10시 반 전날 밤 이후 흐드러지게 내리는 빗속에 5색의 테이프를 끊었다. 배는 신조선인 만큼 작지만 아름답다. 선체는 목조인데 디젤로 12마일은 나간다. 조선 연안선의 배로서는 가장 우수한 것이다. 동 회사는 이 처녀항해에 있어서 이 단체를 위해 처녀항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면 대략의 일정이 있는데 배는 자유롭게 사용해도 어떻게 해도 된다. 일전에 내조했던 세계일주의 호화로움에는 필적도 되지 않지만 조선에서는 호화로운 여행단이다. 제1 처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닐까? ◇……◇ ‘비온 후 맑음’의 예보를 담보로 출범한 황영환은 호조의 쾌음을 내며 낙동의 하구를 12마일 반으로 강행했다. 그후의 코스는 조선 8경에서 칭송되는 섬 또 섬인 한려수도이다. 평화로운 세토(瀬戸)내해이다. 그러나 풍광명미(明媚)한 수도도 ‘후 맑음’이 적중되지 않아 비로 대신했다. 아직 춘우의 느낌이 깊다. 섬들이 흐릿하니 떠있다 흘러 사라져 간다. 과연 한려수도이다. 비가 와도 좋은 절경이다. 단원도 매우 활발해서 나 또한 작은 비를 피해서 보트의 갑판에 섰다. 배에 약하다면 여기야, 정말로 자신 없지만 배 여행은 인상적이고 회고적이어서 좋아한다. 가방 속에는 아달린이 있다. 매우 마음을 강하게 해도 좋지 않을까, 통영은 통과해서 오후 5시 여수에 도착했다. 아치에 만국기를 달아 처녀선과 우리들 일동을 환영해 주었다. 여수에는 황영기선의 본사가 사장은 있으며 사장은 치길신(致吉信) 씨이다. 이것은 쓰카사요 시노부라고 읽는데 몇 년간을 무○로 계속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활발한 남자였다(가쓰토는 선상의 일행=근등생(近藤生)) ※준관(슌간, 俊寬)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5-05
저자명
부산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8
첨부파일
206_19370505_160(부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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