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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를 전부 말한다)처녀항해의 ‘황영환’에서[2] ((濟州島をなに語る)處女航海の"晃永丸"で[二])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전설과 해녀가 사는 섬 제주도 시찰여행(傳說と海女住む島 濟州島の視察旅行) 여수지방 분들에게 전송받으면서 만세소리도 씩씩하게 오후 10시에 출범했다. 드디어 지금부터 일약 목적지인 제주도로 향했다. 바다는 다소 파랑이 일고 있는데 동북풍으로 뒤에서 부는 바람이다. 단원도 나도 이것이 가장 염려 하는 바이다. 간사인 우전(有田) 군은 괜찮다고 하고 단원인 양병환 씨는 무풍상태라고 말해서 웃게 했다. 양 씨는 제주도 출신으로 이 항로는 익숙해 있다. 이번과 같은 조용한 바다는 드물다, 그래서 무풍상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무풍상태’가 배 안을 활기차게 했다, 누구나 ‘그렇지 무풍상태다’ 맥없이 일행을 기쁘게 했다. 배는 남으로 키를 잡고 일로쾌음을 계속한다. 디젤의 논조는 정확한 리듬을 선체에 울리면서 일행을 안심시킨다. 무풍상태여도 일행 중 바다에 자신이 있는 자는 매우 드물다. 배가 여수항을 떠나자 항구의 불빛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앞 다투어 잠들어버렸다. 조금은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 술이라고는 하면 이번 여행은 상당히 취해 있었다. 배 안에서는 첫 번째로 아침술이 나오는 것이다. 점심에도 나온다. 밤에는 연회라는 술 일정으로 거문도에서는 천장절(天長節)이었는데 아침부터 연회다. 나는 처음이었지만 아침 해를 등지고 술을 마셔도 다소는 ○지만 기분은 난다. 노래에 거는 경기이므로 상당한 것이다. 제1 접대역할 겸 간사인 황양기선의 유전(有田) 군이 아침부터 배로 힘들었기에 참지는 못했던 것이다. 여수에서는 상공회 사람들이 산해로 초대해서 연회를 했다. 부산 일류 상인들이어서 크게 간담, 그 거래의 원활한 미끼 그것을 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우리들과 회의원으로부터 파견된 팔등신(八尋君やひろきみ)은 용건 없는 자들이어서 환영의 인사와 이에 답하는 대흑(大黑)단장의 감사인사를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부산은 반도 이를테면 내지인으로서 선진의 토지이다. 거기에 세력을 갖는 일행이므로 인사도 매우 꼰대같고 딱딱하고 형님 같은 태도가 말의 군데군데에서 표현되어서, 각지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부산 상인의 힘에 순간 놀랐다. 실제로 각지의 (6~7자 정도 찢김) ‘그렇게 양해를 부탁드리옵니다(左様御諒承願ひます)’라는 말이 많아서 지금까지 양 씨의 ‘무풍상태’와 ‘그렇게 양해를 부탁드리옵니다(左様御諒承願ひます)’가 배 안에서 유행어가 되었다.―그렇게 양해를 바라고 싶다. ◇……◇ 단장은 전기한 대흑유송(大黑酉松) 씨, 간사는 유전(有田) 씨, 부단장이 길전(吉田) 씨, 나머지 스타(花形)! 이것은 머리가 매끈 매끈하고 애교 있어서 스타가 된 입석선○(立石善○) 씨, 술의 원전(原田) 씨(이 사람 그다지 술은 마시지 못한다) 색남군 권길(權吉) 씨, 연회에서는 적의 정면에 서는 마도(馬渡) 씨에 이어 이전사옥(伊田糸屋), 아즈마와 전중(田中) 씨가 가 더해지며 남자연예인 대신에는 시계점인 융(戎) 씨가 있다. ‘에비스 다이코쿠(戎大黑)는 배 안에 계시다’ 라고 하는 분위기로 바다는 무풍상태에서도 배 안은 정말로 활기찬 것이었다. 자네, 대략 이런 것이라고 그렇게 양해를 바라고 싶다. (사진은 제주도의 지도=근등생(近藤生))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5-06
저자명
부산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8
첨부파일
207_19370506_161(부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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