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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신문기사」해녀와 전설의 동경 전남의 보고【2】 (海女と傳說の憧 全南の寶庫【二】)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도로 시찰 여행(濟州島への視察の旅) 진주 소 산생(晋州 蘇 山生) 목포, 제주도 간 해로는 매우 거칠다고 들었지만 날씨를 잘 만나서 운 좋게 평온. 2등실에 자리를 잡은 일행 중 소장의 무리에는 저녁 반주의 기염이 점차 심해진 중에도 이타도 없는 모 변사의 한바탕의 긴 강연이 12시 경에 끝을 고하자 스크류 소리에 코고는 소리를 장단 맞추며 배는 시속 10해리로 꿈을 싣고 남진하는 그 정적. ‘곧 도착합니다’라는 사환의 목소리에 눈을 뜨니 벌써 제주도의 등대가 보인다. 공비용 60만원을 투자해서 축조한 동서 530마일, 남북 150마일의 대방파제를 두른 산지항에 들어서서 남방 답에 우뚝 솟은 명봉 한라산을 우러러보며 배를 내려서 잔교를 오르자 죽중(竹中)공장주와 도청간부들의 환영으로 지정여관 석송에 들어가서 세수를 하고 유쾌한 조반회식을 마치고 준비를 하는 사이에 기자는 단독으로 제주도신사에 참배했는데 신전의 경내 그 외에 장전의 멋을 느끼며, 다만 참도 입구 양쪽에 선당나라 사람 같은 대석상이 고색창연한 것이 있는 것을 보고 기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8시 반 먼저 제주도청을 방문한다. 도사(島司) 고천정길(古川貞吉) 씨는 일한합병 전부터 재무고문부 소속으로서 도선해서 대정5년(1916년) 좌좌목(佐々木) 경남지사 시대 위생과장으로 진주에서 재직하고 있던 사람으로 진주, 사천 등은 옛날부터 알고 있어서 그리움이 있으며 그 후 경성서장으로 승진 발탁되어 작년 현직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씨는 유쾌하게 일행을 회의실로 모으고 약 1시간에 걸쳐서 도도하게 다음과 같이 도세의 개요를 설명해 주었다. 제주도는 반도 남단에 고립하는 동남 20리, 남북 10리의 섬으로 조선 8경 투표에서 처음으로 널리 세상에 알려졌다. 섬의 전설에 의하면 태고 시대에 양을라, 고을라, 부을라의 삼신이 삼성혈에서 나타났다. 어느 날 삼신은 동해 해변에 서있자니 해상에 진흙을 바른 큰 함이 떠내려 왔다. 그 옆쪽에 자색 옷을 입은 동자가 있고 함을 열어 안에서 푸른 옷을 입은 처녀 3인과 오곡의 종자와 망아지, 송아지를 꺼내고 말하기를 “우리는 일본의 국사이다. 우리 왕이 이 세 공주를 낳았다. 서해의 중악에 신의 아들 3인을 내려 보내 장래에 나라를 세우려고 하나 아직 배필 없으니, 신에게 명하여 세 공주를 모시고 왔습니다. 부디 비로 맞아서 대업을 이루소서” 라고 말을 끝내고 홀연히 백운을 타고 사라졌다. 그래서 삼신은 나이순으로 세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여 세 곳에 도읍에 거주지를 정하고 처음으로 오곡을 뿌리고 망아지와 송아지를 기르고 농경어로에 힘써서 섬을 개척했다. 이것이 본섬의 선조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읍의 남방 수정의 땅에 삼성혈인 고적한 사전에 6개의 위폐를 모시는 삼성의 자손이 번갈아가며 봉사하며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삼성씨국을 세워서 탐라국이라고 칭하고 독립하고 있었는데 신라, 백제, 고려에 복속하기도 하고, 도 원이나 명조에 예속한 적도 있다. 후에 이조에 속해서 검제사(儉制使)를 두어서 목사가 이것을 겸했는데 태종왕 새로이 안무사(按撫使) 겸 목사를 두었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6-26
저자명
부산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33
첨부파일
225_19370626_224(부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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