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제하신문기사」해녀와 전설의 동경 전남의 보고【5】 (海女と傳說の憧 全南の寶庫【五】)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도로 시찰 여행(濟州島への視察の旅) 진주 소 산생(晋州 蘇 山生) 제주읍 출발 이래 2시간에 겨우 26여리에 지나 않는데 이 사이에 일행이 얻은 것은 적지 않은 것이 있었다. 12시 한림항에 도착한다. 한림항은 본도 4항 중에서 가장 좋은 항구로 소박하고 장래 어항으로서도 장려 또 무역항으로서도 제일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인정받고 있다. 소화9년(1934년) 전남도 직영으로 공사비 12만원을 투자해서 방파제를 축조하고 크게 모습을 새로이 고쳐서 제주도 어업주식회사가 진출해서 상무이사역 유길 경길(有吉京吉)(현 진주소학교 유길 훈도(訓導)의 영형) 씨가 나노도(羅老島)에서 겸임으로 크게 활동하고 있다. 항내 돛대가 즐비하게 늘어선 어선이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다. 군대환(무선전신을 가지고 있는 8백 톤 기선)은 매월 3회 입항해서 본 하우를 근거로 해서 직경 3백 해리의 해상 사이에서 원양하는 저인망어업의 모선으로서 ○○의 원조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서북으로 돌아보는 사이에 비양도가 있어서 서북풍의 격랑은 완전히 차단되는 천혜가 있어 내측 수심 깊어서 바다가 거칠어질 때는 대형 선박도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기 때문에 장래 동북방면의 방파제 시설을 완성하면 본도 교통경제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12시 반 동경의 죽중(竹中) 통조림공장에 도착해서 공장주 죽중(竹中) 씨의 소개로 공장 지배인 현 전남도회 관선의원 대촌륭행(大村隆行) 시에게 면회하고 경의를 표한 씨는 죽중(竹中) 씨의 조부 이래 3대에 전적으로 일해서 오늘날 인줄이 된 은인으로 나이 50에 가까워도 체구 강건 건장하게 이어져서 감개하며 청색복 모습으로 일견 직공으로 보이는 씨의 활동상에는 전원 일제히 깊은 감동을 받았다. 공장 뒤의 천막 내에 설치된 즉석 식탁의 하얀포 위에는 대촌(大村) 부인을 비롯한 직원 부인의 마음으로 만든 화양식(和洋式) 가정요리가 늘어놓아져 있고 신품의 통조림 상자를 의자로 해서 일동 중식 접대를 받았다. 어채신선하고 조미가 좋아서 맛이 없을 수 없다. 특히 동경주반이 원료로 유명한 작은 상어와 오징어의 맛은 우원(宇垣) 전 총독이 절찬했던 그대로이다. 일행 사양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서 만복의 대접을 받고 이군수의 선창으로 공장의 만세삼창 건배했다. 잠시 휴식 후 죽중(竹中) 공장주와 대촌(大村)공장장의 안내로 목하 그린피스 가공이 한창인 통조림 공장을 견학한다. 공동판매소에서 산입해 온 껍질완두는 먼저 기계로 껍질을 제거하고 튀어나오는 콩은 사방 6척 크기의 쇠망 안을 우레와 같이 굴러 떨어져서 다음의 만석을 통과하고 또 정선되어 좋은 충실한 알맹이 만이 다음 기계에서 풍부한 청수로 씻어서 푸른색을 유지할 수 있는 약품을 첨가해서 증기로 익혀진다. 이것을 냉각해서 환상행열로 돌고 있는 통에 넣으면 재빨리 여공의 손끝에서 증감되어 앉은뱅이저울 위에 일정 양으로 맞춰 딱 두껑을 잠그면 통조림이 횡으로 굴러서 눈 깜짝할 사이에 토해내어 종으로 늘어서서 사람 손에 들어가서 라벨을 붙여서 일정한 수가 상자에 넣어져서 불순물을 털어 내서 여기에 오기까지의 시간을 묻지 못한 것은 깜박했는데 40분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그 기묘함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장내 일면 청수가 흘러넘치고 먼지가 없어 청정무구위생상 조금도 비난할 여지가 없다. 식료품 통조림은 이렇게 해서 생산되므로 하등의 걱정할...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7-01
저자명
부산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42
첨부파일
229_19370701_232(부산).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