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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의 동아시아 교섭과 신라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탐라의 대외교섭을 문무왕 2년의 탐라국 내항 기사와 문무왕 19년의 신라의 탐라국 경략기사, 그리고 애장왕 2년(801)의 탐라국 조공 기사를 중심으로 살피고, 탐라의 특산물이 신라 대외 교역사상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에 문무왕 2년(622) 탐라국의 신라로의 내항은, 백제 의자왕의 항복에 따라 백제의 속국으로서 당나라와 신라에 대한 항복의 의사를 표한 것이었다. 또한 문무왕 19년(679) 2월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탐라국을 경략하였던 것은, 탐라국이 백제부흥군과 웅진도독부-왜로 이어지는 동맹의 라인을 유지하던 가운데, 676년 기벌포 해전으로 나당전쟁이 종결되고 678년 4월 신라가 무진주 도독을 임명하여 전라도 일원까지 지배력을 확대하자, 동 시기에 8개월 여 동안 일본에 함께 체재한 신라 사신과 탐라국주 간의 협의가 있었던 데서 가능하였다.신라는 탐라국에 대하여 안승의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그 독자성을 인정하여 종묘와 사직, 독자적인 내정과 외교권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탐라는 일본에 마지막으로 사신을 파견한 693년 11월 이후 외교권을 박탈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탐라의 특산물 가운데 珍珠와 玳瑁, 牛毛, 그리고 白芷・八角・零陵香 등의 향료, 사향, 石決明 등은, 탐라가 백제・신라와 내왕하면서 고급 물품의 재료나 향료, 약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이 개발함으로써, 통일신라의 융성한 대외 교역품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8
저자명
박남수
소장처
KCI
조회
21
첨부파일
탐라국의 동아시아 교섭과 신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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