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탐라순력도 - 제주목: 조천조점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1702년(숙종 28) 10월 20일에 있었던 조천진 성정군의 군사훈련과 인근 제2소 목장의 둔마(屯馬)를 점검하는 그림이다.

 조천진의 위치와 진 안의 연북정을 비롯한 건물배치 상황, 민가의 위치, 해안에 흩어져 있는 여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조천진은 서산봉수와 조천, 왜포, 함덕연대를 관할했다.

 원형의 성으로 이루어진 조천진은 성문이 남쪽에 하나만 있다. 성문인 남문은 정면 1간의 루가 있는 우진각 초가다.

 성벽 위의 회곽도를 오르기 위한 돌계단이 성문 옆에 축조돼 있으며 여장도 설치돼 있다.

 남문을 들어서면 바깥마당을 두고 군기고가 자리 잡고 있으며 군기고 중 정면 1간으로 된 대문에 이른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객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객사는 남문을 향해 있으나 서향을 한 것이 특이하다.

 객사 왼쪽에 군기고, 오른쪽에도 군기고가 있고, 앞쪽에도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인 배치는 마당을 중심으로 대칭이 되게 ‘ㅁ’를 형성하고 있다.

 객사의 영역성을 확보하기 위해 군기고와 군기고 사이에 담장을 두어 공간분할을 했다.

 성문의 동쪽에는 북쪽에 연북정을 오르내리는 계단을 두고 높은 석축을 쌓았다. 석축 위에는 ‘연북정’이라 하는 정자가 있으며 그 옆에 부속건물이 덧붙여 있다.

 그림 윗부분에 말을 점검하기 위해 설치된 원장과 사장이 보인다. 원장은 우마를 모아놓기 위해 만든 원형목책이며, 사장은 모아놓은 우마를 한 마리씩 통과할 수 있게 만든 좁은 목책통과로다. 사장은 우마의 수효를 파악할 때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 한 마리씩 붙들 수 있게 된 장치다.

 그림 아래의 기록으로 조천진의 조방장은 김삼중이며 그 휘하의 성정군은 423명인데 이들에 대한 점검과 군기 점검, 그리고 2소 목장의 둔마 505필과 목자 87명을 점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에 나타나 있는 지명들을 살펴보면, 조천관리(朝天館里)는 ‘조천관을’의 한자 차용 표기로, 조천읍 

조천리를 이른다. 관포(舘浦)는 ‘관개’의 한자 차용 표기로 조천관포[조천관개]를 줄여서 표기한 것이다. 조천리 포구를 이른다.

 묘수(猫水)는 ‘궤물’의 한자 차용 표기로, 조천리 바닷가의 바위굴에서 나는 물이다. 죽도(竹島)는 ‘대섬’의 한자 차용 표기로, 조천리 앞바다에 있는 섬이다.

자료/저작권정보

탐라순력도(영인본), 제주시, 1994 문화의 원류와 그 이해, 송성대, 각, 2001 탐라순력도연구논총, 제주시·탐라순력연구회, 2000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고광민, 대원사, 2004 제주도지, 제주도, 1993 제주도포구연구, 고광민, 각, 2004 제주도지, 제주도, 2006 제주역사기행, 이영권, 한겨레신문사, 2004 제주문화자료총서4-제주의 민속, 제주도, 1996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 양진건, 문학과 지성사, 1999 돌과 바람의 섬 신들의 나라 제주, 제주도, 2000 와치와 바치, 김순자, 각, 2006 한라산 총서-한라산의 동물, 제주도·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2006 포구, 좌승훈, 나라출판, 1996 제주도 전설, 현용준, 서문당, 1996 오름나그네, 김종철, 높은오름, 1995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703
저자명
제주시 제주목 관아
소장처
제주목 관아
조회
57
첨부파일
탐라순력도_제주목_조천조점.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