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탐라순력도 - 정의현: 우도점마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1702년(숙종28) 7월 13일, 우도 목장 내에 있는 말을 점검하는 그림이다. 하단에 말은 262필이며 이들 말을 관리하는 목자, 보인의 수가 2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도(牛島)는 ‘쉐섬’의 한자 차용 표기다. 제주에서는 소를 ‘쉐’ 라고 부른다. 동두(東頭)는 ‘동머리’의 한자 차용 표기로, 우도의 ‘쉐머리오름’을 이른다. 이름 그대로 이 쉐머리오름을 머리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그림 역시 우도의 모습을 마치 소가 누워있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우도의 지명이 소가 누워있는 모습 같아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이를 그림으로까지 형상화한 점에서 과거 조상들의 독특한 지형인식을 엿볼 수 있다.

 또 이 그림에는 포구와 어용굴(魚龍窟)이 표시되어 있다. 어용굴은 해식동굴인데, 신룡(神龍)이 살기 때문에 어선이 접근하면 대풍(大風)과 뇌우가 일어나 나무를 쓰러뜨리고 곡식을 해친다는 속설이 전해졌던 곳으로, 지금의 동안경굴(東岸鯨窟)을 이른다.

 당시 우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원조 목사가 장계(狀啓)를 올려 우도 목장의 개간을 허락받은 1843년경부터의 일이다.

 오른쪽의 지미망(指尾望)은 ‘지미망’의 한자 차용 표기로, 지금의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표고 165미터의 지미봉(地尾峰)을 이른다.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지말산(只末山) 또는 지미산(只未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두원포연대(頭元浦煙臺)는 ‘두원잇개연듸’의 한자 차용 표기로, 구좌읍 종달리에 있었던 ‘두원잇개’ 연대를 이른다.

 

자료/저작권정보 보기

탐라순력도(영인본), 제주시, 1994 문화의 원류와 그 이해, 송성대, 각, 2001 탐라순력도연구논총, 제주시·탐라순력연구회, 2000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고광민, 대원사, 2004 제주도지, 제주도, 1993 제주도포구연구, 고광민, 각, 2004 제주도지, 제주도, 2006 제주역사기행, 이영권, 한겨레신문사, 2004 제주문화자료총서4-제주의 민속, 제주도, 1996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 양진건, 문학과 지성사, 1999 돌과 바람의 섬 신들의 나라 제주, 제주도, 2000 와치와 바치, 김순자, 각, 2006 한라산 총서-한라산의 동물, 제주도·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2006 포구, 좌승훈, 나라출판, 1996 제주도 전설, 현용준, 서문당, 1996 오름나그네, 김종철, 높은오름, 1995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703
저자명
제주시 제주목 관아
소장처
제주목 관아
조회
73
첨부파일
탐라순력도_정의현_우도점마.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