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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濟海 謀變과 相贊契

분야별정보 > 역사 > 사회



 

탐라문화 33호

이 글은 「相贊契始末」을 통해 梁濟海 謀變의 실상을 재조명하고, 19세기 초 鄕權의 동향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상찬계시말」은 양제해 모변으로 흑산도에 유배가 있던 김익강이 진술한 사 실을 기록한 글이다. 이 자료에는 정부측 기록과는 다른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 나 있다. 첫째, 상찬계가 행한 각종 폐단이 사건의 중요 원인이었다. 둘째, 양제 해의 신상, 거사 추진 과정, 告變의 실상, 양제해에 대한 평가 등이 기록되었다. 양제해의 죽음은 상찬계가 행한 의도적인 타살로 보고 있다. 셋째, 이 사건을 상찬계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等訴 운동으로 보고 있다. 넷째, 이도철 · 김재 검 · 김상빈 등 정부측 기록에 보이지 않는 인물들이 기록되었다. 특히 김재검 은 상찬계의 핵심 인물로서, 양제해의 거사를 반란으로 조작하였다. 상찬계는 1790년경에 제주도의 鎭撫吏 · 鄕吏 · 假吏 등 이서층 300명을 결속하여 만든 이권 조직이었다. 상찬계는 제주목사와 결탁하여 세금 징수, 상거 래, 관직 임명 등에 개입하여 뇌물을 챙기는 등 온갖 부정과 비리를 일삼았다. 결국 양제해 등의 거사는 변란ㆍ반란보다는 민란 또는 향전으로 볼 개연성이 높다고 보인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제주도의 鄕戰이 향리ㆍ향임층 내부의 복 합적인 싸움으로 전개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사회
생산연도
2008
저자명
박찬식
소장처
KCI
조회
39
첨부파일
梁濟海 謀變과 相贊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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