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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세기 제주유민의 사회사적 연구

분야별정보 > 역사 > 사회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이 연구는 조선시대 특히 15∼17세기 기간 중에 제주 사람들이 배를 타고 제주도를 떠나 유랑하던 역사를 고찰한 것이다. 이들은 왜 제주도를 떠났을까, 떠난 이들은 바다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는 무엇일까 등의 문제를 고민했다. 이들의 삶을 고찰하기 위해 우선 아날학파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3층구조 역사틀을 활용했다. 기존의 연구는 이들의 출륙 배경으로 척박한 토지, 자연재해, 지나친 수취, 지방관과 토호의 수탈 등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은 비단 15∼17세기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다. 전근대 제주사회 전체를 관통하던 역경이었다. 그런데도 대규모 출륙 유랑은 15∼17세기에만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그렇다면 위의 요인만으로는 15∼17세기 제주유민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이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Ⅱ장은 출륙 유랑의 배경 찾기다. 이들의 출륙 요인을 사회구조적 배경과 자연 환경적 배경으로 나누어 살폈다. 사회구조적 배경으로는 과도한 역(役) 부과와 말 사교역으로 대표되는 제주경제의 변동을 주요한 요인으로 설정했고 자연 환경적 배경에서는 척박한 토지와 빈번한 자연재해를 유민 발생의 중요 요인으로 설명했다. Ⅲ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들 제주유민의 발생을 다뤘다. 먼저 이들에 대한 명칭을 살폈다. 명칭은 크게 두 가지 계통이 있다. 두무악(頭無岳)계 명칭과 포작(鮑作)계 명칭이 그것이다. 두 명칭 모두 본래는 한자어가 아니었다. 본래 토속의 민간 명칭에 그 의미를 살리며 발음이 가까운 한자어를 조합했던 것이다. 물론 포작과 두무악은 의미가 본래 다르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사실상 같은 존재 즉 출륙 제주유민을 뜻했다. 그리고 제주유민의 발생 시점과 격감 시점을 고찰했다. 선행 연구에서는 대부분 성종년간을 제주유민 발생의 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본 연구는 다른 견해를 폈다. 성종년간은 나중에 크게 사회문제화 되었던 시점이며, 발생은 그 이전 즉 세종 때부터 시작이라고 논증했다. 격감 시점은 선행 연구와 일치한다. 인조7년(1629년) 강력한 출륙금지령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구성을 살폈다. 초기 유민은 제주도민 전반에 걸쳐 형성되었다. 말(馬) 경제 관련자들이 제주도민 전반에 걸쳐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출륙 유랑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층민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제주유민이 섬을 벗어나 진출했던 지역은 실로 방대했다. 멀리 중국 요동반도 아래의 해랑도에서부터 한반도 전역의 해안에 걸쳐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물론 남해안이 이들의 집중적인 우거지였다. 기록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일본 열도로도 나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사회
생산연도
2013
저자명
이영권
소장처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
조회
23
첨부파일
15∼17세기 제주유민의 사회사적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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