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김칭비(효자김칭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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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칭(金秤)
소재지: 제주시 구좌면 김녕리
규격(cm): 높이 87 너비 39 두께 16.5
정려(복호)연도: 1487년(성종 18)
건립연도: 1859년(철종 10) 개석려
비문(전면): 孝子金秤之閭
비문(전면 우): 本以記官下 聞母疾甚 卽走奉脛 血和
비문(전면 좌): 酒進之 復甦終二十有年 成化丁未旌閭
비문(후면): 咸豐 己未 本里 朴振 改石閭
비문(전면 우좌) 해석: 본주의 기관으로 관문에 있을 때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곧 달려가 정강이를 베어 그 피를 술에 타서 드리니 다시 소생하여 마침내 20여 년을 봉양하였다. 성화 정미년(1487, 성종 18)에 정려되었다.
비문(후면) 해석: 함풍 기미년(1859, 철종 10)에 본 고을(김녕리) 박진이 석려를 다시 세웠다.
문헌(수록): 신증동국여지승람(이행 등), 탐라지(이원진), 효열록(김영락), 탐라지초본(이원조), 탐라기년(김석익), 증보탐라지(담수계)
문헌(내용): 효열록
본주 김녕리(金寧里) 사람이다. 기관으로 관문에 있을 적에, 그의 어머니가 종기로 앓아 기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갓을 벗고 맨발로 달려가 하루 사이에 두 번이나 그의 정강이 살[경육]을 베어 술에 타 드렸더니, 어머니가 소생하여 마침내 20여 년을 봉양하였다. 정설[정려문]이 있으며, 읍지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