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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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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고윤문(효자고윤문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고윤문(高允文)

소재지 :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규격(cm) : 높이 57 너비 33 두께 10

정려(복호)연도 : 1814년(순조 14).

건립연도 : 1850년(철종 1) 5월.

비문(전면) : 孝子高允文之閭

비문(후면) : 上之十七年丙子 十一月 日 命旌 歲久之後 恐其板刻之易漫 新磨片石以志 永世不朽云爾 道光三十年五月 日 再從孫 濟宗 竪

비문(후면) 해석 : 현 임금 17년 병자년(1816년, 순조 16) 11월에 정려의 명이 내려졌다. 세월이 오래 지난 후 그 새긴 것이 쉽게 마모될까 두려워 새로 작은 돌을 갈아 그 뜻이 영원히 후세에 전하도록 할 뿐이다. 도광 30년(1850년, 철종 1) 5월 재종손 고제종(高濟宗)이 세움.

문헌(수록) : 효열록(김영락), 탐라지초본(이원조), 탐라기년(김석익), 증보탐라지(담수계).

문헌(내용) : 효열록.

본주 두모리(頭毛里) 사람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몸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몸소 목자의 역사에 응하여 쉬는 날이 오히려 적었으나, 매양 부역에 나갈 때에는 반드시 양식과 반찬을 마련하여 어머니의 아침과 저녁 상을 준비해 드렸고, 돌아와서는 어머니의 배고픔을 물어서, 만일 어머니가 배고프다고 하면 놀라 분주하게 밥을 지어 올려서 반드시 배부르게 함을 법도로 삼았다. 어머니 성품이 조급하여 노여워하며, 자주 꾸짖으며 매질이 있을 때마다 앉아서 그 매를 맞았는데, 사람들이 혹 피하라고 권하면, “자식의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어머니의 노여움이 더할까 두렵다.”고 하였다. 나이가 이미 성인이 되었으니, 아내를 맞이하라고 하면, “아내를 맞이해서 어머니의 마음에 합당하지 아니하면, 홀아비로 살면서 몸소 어머니의 뜻을 받드느니만 못하다.”고 하여 한평생 아내를 얻지 아니하였다. 갑술년(순조 14, 1814)에 암행어사가 조정에 아뢰어 정설하였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1
첨부파일
효1-6 효자 고윤문(효자고윤문지려)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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