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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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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문달민비(효자문달민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문달민(文達敏)

소재지 :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

규격(cm) : 높이 90 너비 39 두께 15.5

정려(복호)연도 : 1854년(철종 5).

건립연도 : 1938년 3월 5일.

비문(전면) : 孝子文達敏之閭

비문(좌측면) : 昭和十三年 戊寅 三月 初五日 자손 ... 謹立

비문(후면) : 公南平人也 稟性淳謹 孝行卓異 養親竭誠 甘旨必供 溫情不廢 鄕人稱讚 欽美之久矣 往在哲宗辛亥十一月 公父親身病忽發 漸至危劇 則擧斤斫指 出血灌口 垂死縷命 更得蘇完 平復如前 是爲一世之奧感 故登諸面洞任之牒報本州 牧使及本官 嘉尙其行 合諸樹風褒揚之典 而復戶頉役 完文昭然矣 世遠年久 慮其泯蹟 爰表一碣 永垂來世 八男五女 仝碑盡記

비문(좌측면) 해석 : 소화 13년 무인(1938) 3월 5일 자손 ... 삼가 세움.

비문(후면) 해석 : 공의 본관은 남평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삼가며 효행이 뛰어나 남달라 어버이를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였다. 맛있는 음식을 반드시 드리고 따뜻한 정성을 버리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이 칭찬하고 아름다움을 공경한 지 오래됐다. 지난 철종 신해년(1851) 11월 공은 아버지의 병이 갑자기 생겨 점점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나오는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죽음에 직면한 실낱같은 목숨이 다시 소생하여 그전처럼 평상으로 회복되었다. 이는 온 세상에 깊은 감명을 준 것이다. 그래서 여러 면 동임들이 본주에 첩보하여 올리니 목사와 본관이 그 효행을 가상히 여겨 풍속을 세워 포양하는 범에 합당하다 하여 복호와 탈역을 하여 완문에 뚜렷이 밝혔다. 세월이 멀고 오래되면 그 사적이 사라질까 염려하여 이에 한 비갈에 표시하여 길이 후세에 전한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9
첨부파일
효2-15 효자 문달민비(효자문달민지려)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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