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효자 김흥조비(효자통정대부김흥조숙부인밀양박씨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김흥조(金興祚)

소재지 :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

정려(복호)연도 : 1857년(철종 8) 완문 * 1860년(철종 11) 포상

건립연도 : 1954년 3월

비문(전면) : 孝子通政大夫金興祚淑夫人密陽朴氏閭

비문(좌측면) : 檀紀四二八七年甲午 三月

비문(우측면) : 子 性浩鳳吉達弘鳳琪 孫 起富斗珍麗珍麗出德富進赫

비문(후면) : 公諱興祚 籍慶州 天性事親至孝 昏晨之省 甘暖之供 禮志俱養 晳不雄仰 父病危急終 回甦之望 禱天祈地 日夜呼泣 斷指湊血 涓涓灌口 更生幾絶之命 鄕隣咸稱 出天之孝 高宗丁巳 自面里擧實 修報營庭 卽下完文 同庚申御史行 又給褒揚之題 宜家政之樂 世事滄桑 以至于今 卓異之行 念其草野泯沒 以謀不朽之事 玆立棹楔 以興後人之觀感焉

비문(좌측면) 해석 : 단기 4287년 갑오년(1954) 3월

비문(우측면) 해석 : 아들 성호~~손자 기부~~(건립)

비문(후면) 해석 : 공의 이름은 흥조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타고난 품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는 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의복을 만들어 드리며 예와 뜻을 다 갖추어 봉양하면서도 뚜렷이 넉넉하게 우러르지 못해 하였다.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여 끝내 회생할 가망이 없자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며 밤낮으로 소리 내어 울다가 손가락을 끊고 피를 내어 입에 흘려 넣으니 이미 끊어졌던 목숨이 되살아났으므로, 마을에서는 모두가 “하늘이 낸 효성”이라 하였다. 1857년(철종 8)에 마을에서 사실을 들어 관아에 보고하니 즉시 완문이 내렸으며, 1860년(철종 11) 어사의 행차 때에 또 포양의 지령을 내려, “한 가정을 화목하게 한 행적”을 기리었는데, 세상 일이 변화가 많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행실이 초야에 묻혀 버릴 것이 염려되어 오래도록 전하여지길 도모하고자, 이에 정려를 세워 뒷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어 떨쳐 일어나길 바라노라.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첨부파일
효2-4 효자 김흥조비(효자통정대부김흥조숙부인밀양박씨려)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