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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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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조인철비(통정효자조인철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조인철(趙仁哲)

소재지 :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

정려(복호)연도 : 1861년(철종 12).

건립연도 : 1941년 4월.

비문(전면) : 通政孝子趙仁哲之閭

비문(좌측면) : 曾孫 龍振 玄孫 斗京 明元 謹立

비문(우측면) : 昭和十六年四月 日

비문(후면) : 公漢陽府院君涓之十三世孫也 曾自幼時 稟性純孝 篤於事親 扇枕之誠 養志之供 靡不庸極 而及其丁憂 事亡如事存 謹護墓所 風雷暴至 必往哭拜 節序時至 饌品常陳 常誦小學明倫篇 不絶晝夜 事尋之性 至老愈篤 鄕人欽仰 以爲如是 卓異之行 必有褒揚之典也 萬口一談 去去辛酉具由 牒報于本州防禦使 則完文昭在 然而歲遠年久 尙有欠闕於棹楔之典 故刻著片碣 建玆碑閭 庶可爲一世愚夫之慕鑑焉

비문(좌측면) 해석 : 증손 용진, 현손 두경 명원 삼가 건립.

비문(우측면) 해석 : 소화 16년(1941) 4월 건립.

비문(후면) 해석 : 공은 한양부원군 연의 13세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성품과 순수한 효심으로 어버이를 섬기는 데에 돈독하여 여름에 베개 밴 데를 부채질하여 시원하게 해드리는 정성이나 양친의 뜻을 받들어 그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는 데에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 돌아가심에 미쳐 망인을 섬김이 살아 있는 사람을 섬기는 것 같이 삼가 묘소를 지켜서 바람이 사납고 번개가 칠 때에도 반드시 가서 곡을 하며 절하였다. 절기의 차례로 때가 이르면 찬품을 항상 배설하였고 항상 《소학》의 명륜편을 읽으면서 주야로 끊이지 아니했다. 섬김을 이어가는 성품이 늙을수록 더욱 돈독해지니 마을 사람들이 공경하여 우러러 사모하고 이와 같은 탁이한 행실은 반드시 포양의 은전이 있을 것이라 하여 많은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지지난 신유년(1861, 철종 12)에 연유를 갖춰 본주 방어사에게 보고하니 완문이 내려졌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면 오히려 작설의 은전에 흠궐 함이 있을 것이므로 조그만 비석에 새겨 적어 여기에 비각을 세우고 한 세대의 어리석은 남편들이 우러러 받들고 본받을 귀감이 될 것이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첨부파일
효2-2 효자 조인철비(통정효자조인철지려)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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