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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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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고달인비(효자고달인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고달인(高達仁)

소재지 : 제주시 우도면 서광리.

규격(cm) : 높이 140 너비 47 두께 28.5

정려(복호)연도 : 1869년(고종 6) 6월(완문).

비문(전면) : 孝子高達仁之閭

비문(기단 상) : 完文 원문

비문(기단 하) : 完文 해석문

이 글을 만들어 주는 것은 일찌기 들으니 어린 아이가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나면서부터 타고난 양능(良能)이라 하였다. 이 말은 백세(百世)의 스승이로다. 이제 고종진의 큰아들 9세인데 섬 중에서도 외딴 섬 우도에서 태어나서도 하늘이 주신 타고난 양능이 있어 놀이를 한참 할 나이에 능히 효성을 다하여 그의 아버지 죽음 앞에 실오라기 같은 목숨을 잇게 하고자 지혈(指血)을 거듭 한 모금씩 마시게 하였으니 칼날에 끊긴 손가락 흔적이 애처롭다. 이를 본 고을 첩보와 마을 보고서를 같이 하니 눈으로 보는 듯하다. 즉 이 말을 믿는 것은 소위 아이가 아버지를 사랑함이 본연의 孝心인 까닭이며 하물며 島民들은 소송하기를 좋아하며 스스로 人倫을 저버리는 일을 예사로 하며 눈을 부릅뜨고 사소한 이익을 탐내어 돌아다니는 판인데 이 때 한 효자첩이 나오게 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로다. 視務 후에 처음이라. 政事를 봄에 仁義忠孝의 道를 가르침에 있어서 옳고 떳떳한 일이로다. 이에 특별히 표창하는 바이니 마을에서 보고한 아이 이름은 高達仁이라 하였으니 일후에 身戶의 役을 전례에 따라 탕감하는 뜻을 여기 完文을 만들어 밝혀 주노라.

 

해설 : 1982년 5월 18일 우도의 효행소년 고달인에게 서기 1905년 고종이 하사했던 효행상(완문)과 기록을 발견하였다. 고달인은 아홉 살 때 위독한 아버지 고종진(高宗辰)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하게 했는데 그 행적이 이웃과 관청에 알려져 효자로 표창을 받게 된 것이다. 고씨 일가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효자를 낳은 아버지는 흙을 밟고 다니지 말게 하라는 어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말에 태우든지 업고 다니느라고 식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5
첨부파일
효2-11 효자 고달인비(효자고달인지려) 제주시 우도면 서광리(출처 고영철홈페이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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