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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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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고씨(학생문명훈처효열고씨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고씨(高氏), 문명훈(文明訓) 처.

소재지 :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규격(cm) : 높이 79 너비 43 두께 20

정려(복호)연도 : 1884년(고종 21)

건립 연도 : 1941년(추정)

비문(전면) : 學生文明訓妻 孝烈高氏之閭

비문(우측면) : 上之七十八年 ■■■ 謹竪

비문(후면) : 烏虖休哉 夫孝烈眞箇出天之性 而常人之所不得行者也 惟高氏耽羅王子后 諱宗彦女 適于文明訓 家素淸貧 婦功斯勤 養舅姑供旨 常具臨喪祭 盡力專致 而且夫子病革 禱天願代 竟以斷指灌血于口 則遂使將殞之命 便成更生 終得偕老 而鄕黨已稱孝烈焉 高宗甲申春 面薦與鄕校儒狀 一時倂報于營府 則特賜褒善之完文 已久矣 於斯追慕 略敍顚末 以俟天鑑之日云尒

비문(우측면) 해석 : 주상(고종) 78년(1941) (후손) 삼가 세움.

비문(후면) 해석 : 아아! 효열은 참으로 하늘이 낸 성품이며 일반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일이다. 고씨는 탐라 왕자의 후예인 고종언의 딸로 문명훈에게 출가하였는데, 집이 본래 가난하였으므로 부지런히 일하며 시부모를 모시고 맛있는 것을 드리고, 돌아가시자 장례와 제사도 극진히 하였다. 남편의 병이 위독해지자 하늘에 빌며 대신하기를 원했으나 결국 위태로워지자 손가락을 베고 피를 내어 입에 넣으니, 마침내 숨이 떨어지려다가 다시 소생하여 끝까지 해로하였다. 마을에서 이윽고 효열로 일컬어졌다. 고종 갑신년(1884, 고종 21) 봄에 면과 향교 유림들의 진정서가 일시에 모두 영부에 접수되자 특별히 선을 표창하여 완문을 내린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이에 추모하고 간략히 그 전말을 서술하니, “하늘이 굽어보는 때를 기다렸구나.”라고 하였다.

문헌(수록) : 증보탐라지(담수계).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9
첨부파일
열1-7 열녀 고씨(학생문명훈처효열고씨지려)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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