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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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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좌씨(처사조사창실효열좌씨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좌씨(左氏), 조사창(趙仕昌) 처.

소재지 :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규격(cm) : 높이 108 너비 41 두께 12

정려(복호)연도 : 1901년(광무 5)

건립연도 : 1939년

비문(전면) : 處士趙仕昌室 孝烈左氏之閭 光武五年

비문(후면) : 氏籍淸州 苗鄕左時彦之女 曾自于歸 能守婦道 孝養舅姑 克敬家夫 內供外守之行■ 爲一鄕矜式 高宗乙未 家夫 海洋 骸能莫收 氏呼天循海 誓欲同 蒜然改悟 舅姑在堂 幼孤無依 築壇沿邊 夏衣冬服新製 梵前極盡禮節 如是卓行 古今罕有 故面里具由 牒報于本牧 則特褒嘉尙 成給完文 亦載於三綱錄 而世久俗文獻易沒 故不肖 孤胤 誠立棹楔 以表盛典 烈行不朽焉 昭和己卯 子 行淑 孫 泰文泰化 謹竪

비문(전면 좌) 해석 : 광무 5년(1901) 정려(?).

비문(후면) 해석 : 씨의 본관은 청주이며 좌시언의 딸이다. 일찍이 시집을 오면서부터 능히 부도를 지키고 시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하며 남편을 공경하여 안팎으로 집안을 잘 꾸려 갔으므로 온 마을에 모범이 되더니, 고종 을미년(1895, 고종 32)에 남편이 장사하러 바다를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죽었으나 그 유해를 수습하지 못하였다. 좌씨는 하늘에 호소하고 바다를 돌며 같이 죽기로 맹서하였으나 맵게 마음을 고쳐 깨달았다. 시부모가 계시고 어린 것이 의탁할 데가 없었으므로 바닷가에 제단을 쌓고 하의와 동복을 새로 만들어서 단 앞에서 태우며 예절을 극진히 하였으니, 이와 같은 탁행은 고금에 드문 일이므로 면리에서 연유를 갖추어 본 목에 보고하니, 특별히 포상하여 가상히 여기고 완문을 만들어 주었으며 또한 삼강록에도 실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면 풍속과 문헌이 바뀌고 없어지므로 불초자가 정성껏 작설을 세워 성대한 은전을 표하고 곧은 행적이 영원하기를 바라노라. 1939년 아들 (조)행숙 손자 (조)태문 태화 삼가 세움.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9
첨부파일
열2-7 열녀 좌씨(처사조사창실효열좌씨지려)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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