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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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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이씨(통정김려관처효열이씨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이씨(李氏), 김려관(金麗官) 처

소재지 :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

정려(복호)연도 : 미상

건립연도 : 1955년 3월

비문(전면) : 通政金麗官妻 孝烈李氏之閭

비문(좌측면) : 年七十八而終 檀紀四二八八年三月 日 子 景平 謹竪

비문(후면) : 氏全州后人也 年弱冠 幷歸于金氏之門 以事親之孝 孝於舅姑 以如賓之敬 敬於夫子■■■ ■不失尺寸 人莫不敬而禮之 年裳二十四 生一子 十月 所天奄逝 幾欲滅性而顧念 ■禮無托 幼孤無依 斷乎反省 强起■事 喪葬祭奠 一遵家禮 不言不笑 天禮終三年 家勢本窮■成富 統 倫中 行實聞於遠近 全南有司及多士 嘉其卓行 以所薦報 完文至矣 歲月久遠 或有

비문(우측면) : 欠闕於棹楔之典 坎刻著片碣 建玆碑閭焉

비문(좌측면) 해석 : 나이 78세에 돌아가셨으며, 단기 4288년(1955) 3월에 아들 경평이 삼가 세움.

비문(후면) 해석 : 이씨는 본관이 전주이다. 약관의 나이에 김씨 집안에 시집와서 어버이를 섬기는 효성으로 시부모에게 효도하였고, 손님을 대하는 공경으로 남편을 공경하여 조금도 실수함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공경하고 예로 대하지 않음이 없었다. 나이 스물네 살에 아들 하나를 낳은 지 열 달 만에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거의 애통한 마음으로 죽으려 하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니, 제사를 부탁할 사람도 없고 어린 것이 의지할 곳도 없었으므로 결단코 반성하여 억지로 일어나 일을 하며 상장제전은 한 결 같이 가례를 따랐고 말도 웃음도 잊은 채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예식으로 삼년상을 마쳤다. 가세가 본디 가난하여 집안을 일으키고 통륜하는 중에 원근에 행실이 자자했으므로 전남 유사 및 많은 선비들이 그 탁행을 가상히 여겨 천거한 바 완문이 내려졌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 비문(우측면) 해석 : 혹 정려의 은전에 빠질까봐 하여 감히 조그만 비석에 새겨 적어 여기에 비각을 세운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5
첨부파일
열2-14 열녀 이씨(통정김려관처효열이씨지려)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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