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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김씨(처사강응주지처절효유인김씨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김씨(金氏), 강응주(姜應周) 처.

소재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문헌 : 대정현 창천리).

→ 현재는 강씨 후손측에서 서귀포시 하원동(방아오름 남쪽) 진주강씨 창천파 종중묘로 이설하였다.

규격(cm) : 높이 79 너비 64 두께 10

정려(복호)연도 : 1781년(정조 5)

비문(전면) : 處士姜應周之妻 節孝孺人金氏之閭

문헌(수록) : 효열록(김영락), 탐라지초본(이원조), 탐라기년(김석익), 증보탐라지(담수계).

문헌(내용) : 효열록.

대정 유생 강응주의 아내이다. 시집가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남편이 사망하자, 김씨는 몸소 따라 죽기를 맹세하고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아니하였다. 아버지가 울면서 이르기를, “너는 임신한 것이 틀림없는데, 혹 아들을 낳으면 네 남편의 영혼도 굶주리지 않을 것이 당연하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죽으려 하느냐?”하니, 김씨는 이를 깨달아 마음을 고쳐먹고 이 날부터 미음과 죽을 들었으나, 자기가 임신한 것이 아님을 알고는 이로 인해 또 처음에 먹은 뜻을 이루려 하였다. 마침 시어머니 문씨(文氏)의 병이 위독하자 김씨는 또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먼저 죽을 수는 없다. 나의 병든 시어머니를 걱정해서라도 마음먹었던 뜻을 참아야 한다.”하고, 다시 식사를 하며 정성을 다하여 구완하였다. 시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러서는 몸소 장사를 지내는데 필요한 장구를 점검하였고, 이미 장사를 지내고는 자결하여 남편의 뒤를 따랐다. 산수(山水) 권진응(權震應)이 본 현[대정현]에서 귀양살이할 때, 그 정렬을 듣고 이를 위해 기문을 작성하여 드러냈다. 신축년(정조 5, 1781)에 암행어사[朴天衡]가 조정에 아뢰어 정려하였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5
첨부파일
열1-21 열녀 김씨(처사강응주지처절효유인김씨지려) 서귀포시 하원동(출처 고영철홈페이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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