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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정씨 석곡리보개처(열녀정씨지비)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정씨(鄭氏), 석곡리보개(石谷里甫介) 처.

소재지 :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규격(cm) : 높이 54 너비 30.5 두께 7

정려(복호)연도 : 미상.

건립연도 : 1834년(순조 34) 3월 개수.

비문(전면) : 烈女鄭氏之碑 高麗石谷里甫介之妻 哈赤之亂其夫死 鄭年少無子有姿色 安撫使軍官强欲娶之 鄭以死自誓引刀欲自刎 竟不得娶 至老不嫁事

비문(후면) : 到處見聞 重修古跡 莫非其惠 且矜無后 牧使韓公 特下後粮 改造石碑 道光十四年 三月 日

비문(전면) 해석 : 열녀 정씨의 비. 고려 때 석곡리보개(石谷里甫介)의 처이다. 하치[哈赤]의 난에 그의 남편이 죽었다. 정씨는 나이가 젊은데다 자식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안무사의 군관이 억지로 아내로 삼으려하자 정씨는 죽기를 맹세하고 칼을 뽑아 자결하려 하여 마침내 장가들지 못하였다. 늙도록 개가하지 아니한 사실이 있다.

비문(후면) 해석 : 이르는 곳마다 보고 들으며 고적을 중수하였으니, 그 은혜 두루 미치고 후사 없는 이를 긍휼히 여기셨네. 목사 한공께서 특별히 훗날의 양식을 내리어 석비를 고쳐 만들었다. 도광 14년(1834, 순조 34) 3월 일

문헌(수록) : 신증동국여지승람, 탐라지(이원진), 효열록(김영락), 탐라지초본(이원조), 탐라기년(김석익), 증보탐라지(담수계).

문헌(내용) : 효열록.

정의 사람이다. 고려 말에 그의 남편이 합적(哈赤)의 난에 죽었는데, 자못 자색이 있어서 안무사, 군관이 그녀를 협박하자, 정씨는 칼을 꺼내 목을 찔러 죽기로 맹세하고 따르지 아니하였다. 정려문이 있으며, (그 사실이) 읍지에 실려 있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4
첨부파일
열1-14 열녀 정씨 석곡리보개처(열녀정씨지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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