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 김천덕 연근처(열녀시비김천덕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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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덕(金天德)
소재지 :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과물해변.
정려(복호)연도 : 1577년(선조 10)
건립연도 : 1863년(철종 14) 개건.
비문(전면) : 烈女寺婢金天德之閭
비문(전면 우) : 萬曆五年 命旌
비문(전면 좌) : 同治二年 改以石
비문(전면 우) 해석 : 1577년(선조 10) 정려.
비문(전면 좌) 해석 : 1863년(철종 14) 개건.
문헌(수록) : 남명소승(임제), 남사록(김상헌), 탐라지(이원진), 효열록(김영락), 탐라기년(김석익), 증보탐라지(담수계).
안내문(비문 해설)
풀이 : 목사 林晉은 제주판관 趙仁後의 보고에 의해 1577년(선조 10) 조정에 알려 정려의 명을 내리게 했다. 열녀이며 절에 달린 여종 김천덕의 정려 표창을 기리어 비문을 세워 마모되자 286년을 지나 1863년(철종 14)에 위의 옛 비를 다시 세웠다.
내력 : 조선중기의 문인 白湖 林悌는 1577년에 문과에 급제하자, 부친 林晉에게 알리려 입도, 각처를 두루 보며 곽지 마을에 이르니 절개를 지킨 멋진 한 여성의 얘기를 듣고 김천덕 전기를 써서 기행문(남명소승)에 남기니 마을 유림들은 정려문을 건립, 처음 비는 오래되어 다시 세웠다. 처음 정려문은 옛 한길 길가와 과물로 가는 교차지점에 세웠으나 일제가 신작로를 뚫으니 그 길가로 옮겼다. 수십 년 전에 일주도로를 확장할 때에 비석은 학교로, 또 마을회관 안으로 옮긴 것을 431년 만에 해설과 함께 원 위치에 세우니 해수욕장을 찾는 나그네의 마음에 와 닿게 되었다. 곽지리 이장 윤상범이 글을 청하기에 동향 사람 南軒 김찬흡은 붓을 들었다. 고증할 원문 일부는 후면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