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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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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송천향 강시한처(숙부인여산송열녀정려비)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송천향(宋天香), 강시한(康時漢) 처.

소재지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

규격(cm) : 높이 100 너비 45 두께 21

건립연도 : 1971년 7월 개수.

 

안내문

숙부인 여산 송열녀 정려비(淑夫人 礪山 宋烈女 旌閭碑)

소재지 :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열녀 송씨의 본관은 여산(礪山) 이름은 천향(千香)이요 통정대부 송시중(宋時仲)의 딸이며 통정대부 신천강씨(信川康氏) 시한(時漢)의 아내이다. 천향은 부도를 지켜 모든 행동을 법도에 맞게 하였다. 남편의 병이 위독한 때 백방으로 약을 구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치료에 힘썼으나 효과가 없었으므로 하늘에 병이 낫기를 빌고 자신이 대신 죽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즉시 머리를 깎고 얼굴을 궂게 고쳐 세속과의 접촉을 멀리 하자는 결심을 보였고 땅을 치며 하늘을 보며 울면서 따라 죽을 것을 결심하여 음식을 끊고 염습과 장사 의례를 마친 다음 죽으려고 할 즈음에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자 차마 죽을 수 없어 어린 아이를 길러 집을 이루어가게 하면서 죽기를 맹세하고 정절을 지켜 남편의 말과 행동을 생각하고 50년 동안의 수절생활을 하였으므로 마을이 다 그의 정절에 감동하여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면 풍헌(風憲)의 보고와 1763년(영조 39년) 12월 정의현감 조세선(趙世選)의 첩보와 어사 이수봉(李壽鳳)의 장계와 대종백(大宗伯)의 포상제사(褒賞題詞)에 의하여 정표가 있고 삼강록(三綱錄) 향토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효자 강운(康運)은 그의 아들이다. 7대손 인성(寅成)의 도움으로 1971년 7월 낡은 정려 정려비를 고쳐 새로 정려각을 건립하였다. 오늘날로 그 효행을 밝히고 있으니 후세인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1991년 12월

남제주군수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첨부파일
열1-17 열녀 송천향 강시한처(숙부인여산송열녀정려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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