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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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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김씨 김정욱처(열부김씨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김씨(金氏), 김정욱(金精旭) 처.

소재지 :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1리.

정려(복호)연도 : 1782년(정조 6)

건립연도 : 1934년 1월 개수.

비문(전면) : 烈婦金氏之閭

비문(전면 하) : 氏慶州后人金遐之女 年才十九 適延安后人幼學金精旭 翌年有娠 而奄遭城崩之痛 歲則乙未至月也 嘗涕泣而言曰 若生子也則余將爲命 女生也則余生何俟 其臘月乃生女子 翌年正月葬穴之期有日 自縊其室 因爲同穴 嗚呼哀哉 苟非出天之烈 豈能乃爾 歲在正祖辛丑 士林齊控 御史察問 特命旌之 聖朝樹風聲之化 至矣盡矣 乾隆四十七年 三月 日 立旌 歲久不明 昭和九年 甲戌 正月 日 玄孫 麗鍾 堅鍾 權鍾 改竪

비문(전면 하) 해석 : 씨는 경주 김씨 후손인 김하(金遐)의 딸이다. 19세 되던 해에 연안 김씨인 김정욱에게 시집가서 다음 해에 잉태된 중에 그 남편이 돌아갔다. 때는 을미년(1775) 동짓달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만약 아들을 낳는다면 장차 명대로 하겠지만 딸을 낳는다면 어찌 명을 기다리리오.”라고 말했다. 그 해 섣달에 딸을 낳고 다음해 정월 장사 날을 정한 어느 날 자기의 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진하니 같은 무덤 속에 장사지냈다. 아! 슬프다. 진실로 하늘이 내린 지조가 아니면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으리오. 정조 신축년(1781)에 사림에서 일제히 호소함으로 어사가 자세히 묻고는 특별히 정려의 명이 있었다. 조정에서 바른 풍속을 심는 교화가 지극하고 극진하도다. 건륭 47년(1782) 3월 일 정려로 세움. 세월이 오래되어 명확하지 않다. 1934년 1월 현손 여종 견종 권종 다시 세움.

문헌(수록) : 탐라지초본(이원조), 증보탐라지(담수계).

문헌(내용) : 증보탐라지(인물, 열녀).

정의현 사람 김정욱의 아내이다. 19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임신 중이었다. 울며 말하기를, “만일 아들이 태어나면 내가 장차 살 수 있거니와 딸이 태어나면 여생을 어찌 기다리겠는가.”하였다. 얼마 후 딸이 태어나니 (남편) 장례일에 자결하여 함께 묻혔다. 1782년(정조 6)에 정려하였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8
첨부파일
열1-16 열녀 김씨 김정욱처(열부김씨지려) 서귀포시 남원면 하례리(출처 고영철홈페이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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