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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박명복비(박효자명복기념비)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박명복(朴明福)

▲ 소재지 :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 규격(cm) : 높이 102 너비 35.5 두께 20

▲ 정려(복호)연도 :

▲ 비문(전면) : 朴孝子明福紀念碑

▲ 비문(좌측면) : 漢拏之東北麓 猫山下有金寧村 其地土瘠 民俗勤儉質樸 (中略)

▲ 비문(후면) : 休明之時稀現其人故一有其行則■事贊揚傳及後世况風靡俗頹敎 ■ 亂之世 獨朴孝子出於南屹洞 嚴然能盡人子之道 (中略) 朴孝子 諱明福字良奉 密城大君彦忱之裔 入島中祖順元公六世孫也 (中略) 戊寅孝子年當二十一 而父病劇 心驚斫指 血和藥奉進 延命月餘 是孝□□致 及至喪 哀戚愈甚 越三十九年丙辰年 至五十九 而遭母憂 關喪三年 □□子回甲之戊午歲也翌年己未 四月二十五日卒 壽六十二 鄕里驚歎皆以孝子稱焉 (中略) 後三十六年乙未秋 其孫(後略)

▲ 비문(우측면) : 미상

△ 비문(좌측면) 해석 : 한라산의 동북쪽 기슭, 묘산봉 아래 김녕촌이 있다. 토지는 척박한데 풍속은 검소하고 순수하다. (중략)

△ 비문(후면) 해석 : 아름답고 밝은 시기에 드물게 그 사람이 나타나는 고로 전일한 행실이 있은 즉 일을 찬양하고 후세에 전하여 미친다. 하물며 풍속이 퇴폐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홀로 박효자는 남흘동에서 나서 엄연히 자식된 도리를 능히 다하였다. (중략) 효자 박명복의 자는 양봉이다. 밀성대군 박언침의 후손이며, 입도중조 박순원 공의 6세손이다. (중략) 무인년(1878) 박명복이 21세에 부친의 병이 극심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에 약을 섞어 드렸더니 한 달 남짓 연명하였다. 이처럼 정성을 다했으나 마침내 돌아가시자 그 슬픔이 더욱 깊었다. 그 후 39년이 지난 병진년(1916) 59세에 다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상을 치렀다. 회갑인 무오년 다음해인 기미년(1919) 4월 25일에 죽었으니 나이 62세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며 효자라 일컬었다. (중략) 죽은 지 36년이 지난 을미년(1955) 가을 그 후손(후략) ...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3
첨부파일
효2-9 효자 박명복비(박효자명복기념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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