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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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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문달복비(충효문달복지려)

분야별정보 > 역사 > 문화



문달복(文達福)

▲ 소재지 :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

▲ 규격(cm) : 높이 74 너비 38 두께 16

▲ 정려(복호)연도 : 1854년(철종 5, 완문).

▲ 건립연도 : 1938년.

▲ 비문(전면) : 忠孝文達福之閭

▲ 비문(후면) : 公文達敏之從弟也 亦稟性淳謹 幼失父親 將母奉養之節 自來勤懇 母親得病垂死之境 斷指飮血 旋復回甦 往在哲宗甲寅 牧使相時 特爲頉役旌善 又哲宗戊寅 國恤因山時 挺身航海願擔土役 往控于都監所 則特爲讚美爲國之忠民 而自本牧卽爲褒揚 事嘆嗟一身兼此兩美 果爲格天出人也 家而國

▲ 비문(우측면) : 而孝能移忠 與他卓越 則其子孫戶役幷頉 成給完文昭然矣 不可泯蹟 故玆立表碣焉

▲ 비문(후면) 해석 : 공은 문달민의 4촌 동생으로 또한 품성이 순박하고 삼가며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장차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진지하고 간절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나서 죽을 지경에 이르자 손가락를 잘라 피를 마시게 하니 곧 다시 살아났다. 지난 철종 갑인년(1854)에 당시 목사(목인배)가 특별히 역을 면제하고 선생을 표창하였으며, 또 철종 계해년(1863) 국장 장례 때 몸을 일으켜 바다 건너 흙을 짊어질 일을 원하여 도감소에 가서 호소한 즉 나라를 위하는 충성한 백성이라고 특별히 찬미하였고, 제주목에서 즉시 포양하였다. 일에 감탄한 것이 한 몸에 이렇게 두 번씩 훌륭하다 하였으니 과연 하늘에 닿을 만큼 뛰어난 사람이라 하겠다.

▲ 비문(우측면) 해석 : 가문과 나라에서 효행이 충성으로 옮길 수 있었음은 남보다 탁월하였으니 그 자손들은 호역에 모두 면제한다고 작성하여준 완문에 확연히 나와 있다. 자취가 사라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비석을 세워 표시한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0
첨부파일
효2-16 효자 문달복비(충효문달복지려)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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