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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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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진명서처(효열탐라고씨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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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高氏), 고은복(高恩福) 녀. 진명서(秦明瑞) 처.

소재지 :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비문(전면) : 孝烈耽羅高氏之閭

비문(좌측면) : 墓 在堂山卯峯坤作

비문(우측면) : 昭和十七年四月日 住龍水 孫雲精 謹立 (創氏祭宮)

비문(후면) : 氏嘉善高恩福女 晉州后人嘉善秦明瑞妻也 道光甲午生 孝親定省 事夫和順 貞正之從 一門雍睦 央思臨終 割股斷指 注血灌口 殞命回甦 壽加三年 面里報牒 邑宰完文 自官表揚 惟國命旌 聖上之恩 生不感祝 迄于光武 闡聞太學 頒賜三綱錄 卓異之行 罕古稀今 惟我後裔 爲先追慕 建碑表閭 以傍永世耳 生一男二女 通政鳳玄 孫雲精雲澤雲國 曾喆受喆圭 婿洪致化 孫成官 次梁京玉 孫仁奉 大正三年甲寅五月二十九日終

정문(전면 우) : 昭和十七年四月日立

비문(좌측면) 해석 : 묘는 당산묘봉 서남쪽 자리에 있다.

비문(우측면) 해석 : 소화 17년(1942) 4월 일 용수리 거주 손자 운정 삼가 건립.

비문(후면) 해석 : 고씨는 가선대부 고은복의 딸이요, 가선대부 진주인 진명서의 처이다. 도광 갑오년(1834, 순조 34)에 태어났다. 부모에 효도로 아침저녁으로 정성으로 살피고 남편을 온화하게 섬겼으며 바른 마음으로 절조를 지켜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었다. 남편이 위독하자 정강이 살을 베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입에 넣으니 죽을 목숨이 다시 살아나 수명이 3년을 더했다. 마을에서 첩보를 올리고 수령이 완문을 내려 관에서 표창을 했는데 오직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는 성상의 은혜는 살아서 감축받지 못했다. 광무 연간에 알려져 태학에서 삼강록을 편찬하여 반포될 때 수록되어 탁이한 행실이 고금에 드물어 우리 후손들이 먼저 추모하며 비를 세우고 정표하여 영원토록 전할 뿐이다. 1남2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통정 봉현, 손자는 운정 운택 운국, 증손은 철수 철규, 사위는 홍치화 손자 성관, 둘째 사위 양경옥 손자 인봉. 대정 3년 갑인(1914) 5월 29일 돌아가셨다.

정문(전면 우) 해석 : 소화 17년(1942) 4월 일 세움.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문화
생산연도
2016
저자명
제주학연구센터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7
첨부파일
고씨진명서처(효열탐라고씨지려) 한경면 용수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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